제자 감싸다 숨진 교사, 경찰 신고하다 희생된 아이… 속속 드러난 총격 참사 사연

입력
2022.05.27 16:39
10면
교사 가르시아, 학생 보호하다 참변
남편은 아내 헌화한 뒤 심장마비로 사망
범인, 신고 전화하는 소녀 총으로 쏴
당시 교내 경찰 없던 데다 늑장 대응 도마

미국 텍사스주(州) 유밸디의 롭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총격 사건 희생자 신원이 밝혀지면서 안타까운 사연도 속속 전해지고 있다. 교사는 총격범으로부터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내던졌다가 목숨을 잃었고, 10세 소녀는 참상을 경찰에 알리다가 스러졌다. 사촌 지간 학생들이 희생당한 사실도 알려져 비통함을 더했다. 범인 샐버도어 라모스(18)가 학교 배치 경찰의 제지를 전혀 받지 않은 채 교실로 난입한 것으로 드러나 경찰의 부실 대응 논란도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와 CNN방송 등을 종합하면, 24일 발생한 총격 사건 희생자들은 모두 한 교실에 있다가 참변을 당했다. 4학년 교사였던 이르마 가르시아(48)는 라모스가 갑자기 침입해 난사하자 학생들을 보호하다 숨졌다. 가르시아의 조카 존 마티네즈는 “수사 당국이 교실에 진입했을 때 아이들을 품에 안고 있는 이모를 발견했다”고 전했다. 가르시아는 23년간 교편을 잡아왔다.

가르시아의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남편 조 가르시아는 이날 오전 아내의 추모비에 꽃을 놓고 집으로 돌아온 직후 심장마비로 숨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부부의 네 아이들은 이틀 사이 부모를 잃게 됐다. 유족들은 모금 사이트 ‘고펀드미’에 “이르마를 잃은 뒤 찾아온 찢어질 듯한 슬픔이 조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비통해했다.


아메리 조 가르자(10)는 경찰에 사건을 신고하려다 희생됐다. 가르자의 할머니 베를린다 아레올라는 “총격범은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죽을 것’이라고 위협했다”며 “손녀가 911에 전화를 걸자 범인이 (휴대폰을) 빼앗거나 부수는 대신 아이를 총으로 쐈다”고 전했다. 아이의 아버지 에인절 가르자는 당시 응급 요원으로 현장에 출동했다가 한 소녀로부터 딸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소녀가 ‘제일 친한 친구가 경찰에 전화하려다 총에 맞았다’면서 아메리의 이름을 말했다”며 “딸이 친구들을 살리려다 숨졌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길 바란다”고 울먹였다.

희생자인 재클린 카자레스(10)와 애나벨 로드리게즈(10)는 서로 사촌 사이였다. 두 아이의 이모는 “두 조카가 너무 빨리 우리를 떠났다. 마음이 산산조각 났다”며 흐느꼈다. 렉시 루비오(10)와 제이비어 하비어 로페즈(10)는 뛰어난 학업을 이룬 학생에게 수여하는 ‘아너 롤(honor roll)’ 명단에 이름을 올려 가족과 친구들의 축하를 받은 지 몇 시간 만에 참변을 당했다. 렉시의 어머니 킴벌리 루비오는 “축하 행사에서 사랑한다고 말했고 수업 후에 데리러 가겠다고 말했는데 그게 작별 인사가 될 줄은 몰랐다”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경찰의 늑장대응도 드러났다. 텍사스주 공공안전부는 이날 “학교에는 보통 무장 경찰이 상주하지만 라모스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 즉시 대응할 수 있는 경관이 없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초등학교에 배치돼 있어야 할 학교 경찰은 차에 탑승해 있었고, 신고 전화를 받고서야 학교에 달려갔다. 범인은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교실에 난입, 무덤덤하게 범행을 저질렀다. 뒤늦게 경찰이 도착했지만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였다. 라모스는 교실에 바리케이드까지 설치할 시간을 벌었고, 경찰과 대치 끝에 사살됐다. 빅터 에스칼론 공공안전부 지역국장은 “국경순찰대 전술팀은 (총기 난사) 한 시간 뒤인 오후 12시40분쯤이 돼서야 교실에 들어가 라모스를 처리했다”고 밝혔다.

경찰이 적극 대응에 나서지 않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잇따른다. 목격자들은 무장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뒤에도 곧바로 학교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분노했다. 출동한 경찰이 학교 진입에 미적거리자 학부모들이 “차라리 나에게 총과 방탄복을 달라. 내가 학교로 들어가겠다”고 울분을 터트렸다는 보도(AFP통신)도 나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는 29일 현장을 방문해 총기 관련 대국민 메시지를 전달할 예정이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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