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걸릴 콘크리트 타설에 11일" 공사비 급등에 멈춰 서는 건설현장

입력
2022.05.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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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등 수급 어려워 최소 2개월 공기 연장"
자잿값 폭등에 철·콘, 창호, 커튼월 업체 잇단 파업
주택공급 지연될 수도...분양가 상승 불가피

"레미콘이 예정량의 70~80%밖에 수급이 안 되니까 2차 타설 때 쓸 걸 1차에 떼어 쓰고, 3차 물량을 또 2차에 끌어다 쓰게 생겼다. 하루에 마칠 레미콘 타설을 물량 부족으로 11일 만에 끝내기도 한다. 인건비가 쌓이고 공기는 늘어나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26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공공주택지구 현장사무소에 모여 공정 일정표를 다시 짜던 자재 수급 담당자들은 한숨을 쏟아냈다. 최근 건설 자잿값 급등에다 수급마저 빠듯해져 공기 연장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들 중 한 명은 "현재 계약한 5개 레미콘 업체의 공급 날짜가 늦춰지면서 최소 2개월은 공사가 늘어질 것 같다"며 "적어도 2주 전에는 타설 일정을 잡아야 하는데 제대로 물량이 오지 않으니 큰일"이라고 말했다.

맞은편 한 종합건설사의 공사 현장도 레미콘 수급으로 비상이 걸리긴 마찬가지였다. 자재 담당 직원은 "철근 등 수급 지연에 30일, 레미콘으로 21일을 더해 공사가 총 50일 정도 밀린다고 오늘 본사에 보고했다"며 "예정분의 60%밖에 수급이 안 되니 1년이면 끝날 구조물 공사가 더 길어지게 생겼다"고 걱정했다.

현장의 아우성은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송파구의 지식산업센터 건설 현장 관계자는 "지난해 11월부터 터파기 작업을 하고 이제 골조 공사에 들어가는데 전국적으로 콘크리트 수급난이라고 하니 걱정"이라며 "규모가 큰 현장들은 어떻게든 자재를 확보하겠지만 우리 같이 작은 곳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철근·콘크리트, 창호·커튼월, 화물연대 연이어 파업 예고...공사중단 위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이 촉발한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 여파가 건설 현장에 몰아치고 있다. 전국의 현장 곳곳이 공사 중단 위기에 처했다. 자잿값에 짓눌린 철근·콘크리트 업체들은 파업을 반복하고 창호 업체들과 화물차 기사들도 다음 달 무기한 파업을 예고했다. 분양가 상승은 물론 정부의 주택공급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철근·콘크리트 연합회는 내달 8일 회의를 열고 파업 등 단체행동 방식을 결정할 예정이다. 김학노 서울·경기·인천 철근콘크리트연합회 회장은 "이달 말까지 시공사에 인상분을 고려한 협상안을 달라고 했고 차후에 구체적인 파업 범위를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일에는 부산경남 레미콘업체들이 파업에 돌입해 13일간 공사현장이 멈추기도 했다.

전국 약 700개 현장에서 일하는 창호·커튼월업체연합회 또한 원자잿값 인상분을 공사비에 반영하지 않을 시 내달 2일부터 전면 공사 중단에 들어갈 방침이다. 유병조 한국창호·커튼월협회 회장은 "알루미늄, 스틸파이프 가격이 지난해보다 2배가량 올라 현재 공사비로는 인건비는커녕 자재비 감당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자재 운송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는 "경유가격 폭등에 따른 유류비 추가 지출로 생존권 위기를 겪고 있다"며 내달 7일부터 대규모 총파업을 선포했다.

주택공급 확대 정책 차질 빚나...분양가 상승 '예견된 수순'

전문가들도 우려를 쏟아 낸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계획할 때 산정한 공사비와 실제 비용이 크게 차이 나면서 발주부터 문제가 생긴다"며 "주택공급 확대라는 정부 정책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공사비 인상은 정비사업 조합원들과의 갈등을 야기하는 원인이 된다"며 "정비사업에 제동이 걸리면 공급 부족 해소 시기가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분양가 상승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올 하반기 분양가상한제에 적용되는 기본형 건축비가 오르면 분양가 또한 오를 수밖에 없다"며 "자잿값이 건축비에 반영되기 전까지 시공사들은 착공, 분양을 미룰 것"이라고 예상했다.

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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