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26일 폭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기존 연 1.5%에서 연 1.75%로 0.25% 포인트 인상했다. 한은이 두 달 연속 금리를 올린 것은 15년 만에 처음이다.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 역시 종전보다 1.4%포인트 대폭 높인 4.5%로 제시하며 기준금리 추가 인상 의지도 강하게 내비쳤다.
이날 기준금리 인상은 금통위원 6명(임지원 위원 퇴임 후 공석)의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한은은 지난해 8월부터 이번까지 9개월간 5차례에 걸쳐 0.25%포인트씩 금리를 올렸다. 기준금리가 연 1.75%가 된 건 2019년 7월 이후 2년 10개월 만이다. 특히 한은은 지난달에 이어 두 달 연속 인상에 나섰다. 기준금리가 두 달 연속 오른 건 2007년 7·8월 이후 15년 만에 처음이다.
한은이 두 달 연속 금리인상이란 초강수를 둔 건 물가 상승 압력이 그만큼 거세기 때문이다.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8% 올라 13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향후 소비자들의 물가 전망인 기대인플레이션율(3.3%)도 약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한은은 당분간 물가 상승률이 5%를 웃돌 것으로 내다보며 사실상 '물가 비상'을 선언했다. 이날 취임 후 첫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주재한 이창용 총재는 "이달부터 7월까지 5% 넘는 물가 상승률이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며 "물가의 부정적 파급효과가 예상되는 만큼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은은 이날 발표한 5월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소비자물가를 종전 3.1%에서 4.5%로 1.4%포인트나 끌어올렸다. 이는 2008년 7월 전망(4.8%) 이후 14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이 총재는 "앞으로 수개월간 5%대 물가 상승률을 감안할 때 물가 정점이 올 중반기 이후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국제유가가 연말 이후 하락한다 해도 곡물 가격 인상으로 내년 초까지 4%대 물가 상승이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종전 3.0%에서 2.7%로 내려 잡았다. 거리두기 해제 등으로 민간소비 등이 회복세를 보이겠지만, 중국 봉쇄 조치와 우크라이나 사태 등이 경기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경기침체 속 물가가 급등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에 대해 이 총재는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여전히 잠재성장률을 웃돌고 있다"며 선을 그었다.
한은은 연내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도 재확인했다. 이 총재는 한은의 올해 최종 기준금리 수준이 최대 연 2.5%가 될 수 있다고 보는 시장 전망에 대해 "합리적인 기대"라고 말했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가 올해 4차례(7·8·10·11월) 남은 상황에서, 금리를 3번(0.25%씩) 더 올리면 연 2.5%에 도달하게 된다. '빅 스텝(한 번에 0.5%포인트 인상)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 총재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고 답했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가계 이자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나 소비와 투자 등 우리 경기에 부담이 될 거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비상 걸린 물가 상황과 향후 추가 빅 스텝을 예고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고강도 긴축 계획 등을 감안할 때 한은의 인상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 인상을 미뤘을 때 부정적 효과가 더 커질 것을 우려하는 통화당국으로선 속도전은 불가피했을 것"이라며 "미국의 긴축 행보까지 빨라지면 한은으로서도 추가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