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과 방위력 강화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미일 정상은 중국에 대항해 전통적인 안전보장 분야는 물론 경제 분야에서도 협력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양국이 첨단기술 수출규제 등의 방식으로 자국 기술을 보호·촉진하고, 공급망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3일 도쿄 모토아카사카 영빈관에서 미일정상회담을 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 개혁 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하겠다고 표명하고, 중국의 대만 침공 시 군사 개입에 대한 질문에도 분명하게 “예스(그렇다), 그것이 우리의 약속”이라고 못 박았다. 상임이사국 진출 문제에 대해 미국이 명시적으로 지지의사를 공개 확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일본을 앞세워 대(對)중국, 대러시아 외교를 재조정하는 측면이 있는 데다, 힘으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변화시키겠다는 움직임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날 회담에서 미일 정상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국제법 위반에 해당하는 중국의 패권적 행동 등 안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미일 동맹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의 초석”이라면서 “일본 방위에 전면적으로 관여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시다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상당한 수준의 방위비 증대 방침을 밝혔고,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강한 지지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경제안보 협력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지역 파트너들을 위해 5세대(5G) 이동통신의 안전성을 높이고, 반도체, 배터리, 핵심 광물의 공급망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공동성명에도 “두 정상은 양국이 수출 통제의 활용, 각각의 경쟁 우위 지원, 공급망 확보 등을 통해 중요한 기술의 보호와 촉진에 협력할 것임을 확인했다”고 명기했다. 첨단 기술은 중국에 수출하지 않고 미일이 협력해 개발한다는 의미다. 양국은 ‘반도체 협력에 관한 기본 원칙’을 바탕으로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위한 태스크포스(TF)도 구성한다. 성명은 일본 국회를 최근 통과한 ‘경제안보추진법’도 언급하며 “경제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추가 협력을 모색하는 데 양 정상이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 지속 등 이날 발표된 합의 내용의 상당 부분이 이미 사전에 알려진 것이었지만, 일본의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지지는 예상 밖이었다. 기시다 총리는 정상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유엔 안보리 개혁이 실현되면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기자회견에서 설명했다. 이 내용은 공동성명에도 명기됐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의 방위력을 발본적으로 강화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방위비를 상당한 수준으로 증액한다는 의지를 전달했고 이를 바이든 대통령이 강력하게 지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집권 자민당은 최근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현 1%에서 2%로 증액해야 한다고 정부에 공식 제안한 바 있다. 기시다 총리는 특히 '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이름만 바꿔 오히려 개념을 확대한 '반격 능력'을 포함한 온갖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겠다는 취지를 회담에서 바이든 대통령에게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미국이 대만 방어를 위해 군사개입을 할 수 있다는 뜻도 밝혔다. 그는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군사개입을 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예스"라고 답하고 "우리는 중국과 '하나의 중국 원칙'에 합의했지만, 그것이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취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군사력을 제공한다는 대만 관계법 약속을 재확인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아사히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언론은 “대만 방위 의사를 명확히 보여준 이 발언은 역대 미국 정권의 '모호한 전략'을 넘어선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