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가 포항제철소의 공해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인 주민들을 달래기 위해 주민들 명의로 협력업체를 만들어 해마다 2억~4억 원을 지급한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항의 시위에 1,5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참여했음에도, 포스코가 만든 협력업체는 특정 주민이 이익을 독식하는 구조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포스코가 주민들의 반대 집회를 무마하기 위해 주동자 격 주민들을 돈으로 포섭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3일 경북 포항시 해도동 주민 150명으로 결성된 단체 ‘해도동지킴이’에 따르면, 이 단체는 지난 15일 지역 주민을 모아 포스코 협력업체 A사의 실질적 소유주이자, 해도동의 또다른 단체인 '형산강지킴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경과를 설명했다. 해도동지킴이는 시위에 참여 했는데도 A사의 수익금을 받지 못한 주민들로 구성돼 있다. 이 중 65명이 먼저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A사는 철광석과 석탄 가루가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원료 위에 뿌리는 표면경화제를 공급하는 회사다. 법인 등기부등본을 보면 자본금 2억5,000만 원으로 설립해 사내이사 3명, 대표이사 1명이 있는 주식회사로 돼 있지만, 실상은 2005년 5월부터 4년간 제철소를 상대로 시위를 해 온 '형산강변공해대책협의회(이하 형산강협의회)'를 입막음하기 위해 포스코가 비밀리에 만든 회사란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09년 7월 2일 형산강협의회는 포스코 협력회사 B사의 대표와 제철소에 표면경화제를 납품하는 A사를 설립하는 상생협력협약을 체결하면서 '포스코 포항제철소와 지금까지 수많은 갈등과 반목을 정리하고, 각종 집회와 시위 일정을 전면 백지화하겠다'고 약속했다. 협약서가 체결되기까지 포항제철소장, 제철소 보건환경그룹장이 형산강협의회 간부들과 포스코 청송대에서 수 차례 만났다.
A사 설립에 필요한 자본금 2억5,000만 원은 양측의 갈등을 중재해 온 B사의 대표가 출연했고, 형산강협의회 소속 주민 5명이 서류상 주주로 이름을 올렸다. 이후 형산강협의회는 형산강지킴이로 이름을 바꿨다.
A사는 포스코에 표면경화제를 공급하며 해마다 2억~4억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다. 회사의 이익금은 시위에 참여했던 형산강지킴이 주민 1,518명에게 고루 배분되지 않았고, 포스코와 거래 내역도 공개되지 않았다.
수익금을 받지 못한 주민들은 해도동지킴이를 결성한 뒤 이번에는 A사와 포스코 앞에서 집회를 열고 “보상금(회사 이익금)이 주민 전체를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형산강지킴이가 A사의 이익금을 나눠 가져야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아 손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냈다.
A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 최종 승소했음에도 해도동지킴이 소속 65명은 지금까지 손해배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재판 과정에서 A사의 수익금 일부와 사용 내역이 밝혀졌다. A사는 지난 2013~2016년 10억1,520만 원을 형산강지킴이에 지급했다. 하지만 형산강지킴이는 이 중 2억5,960여 만 원만 418명에게 분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 대부분은 일부 임원 등 극소수 주민이 나눠 가졌다.
승소한 65명은 자신들처럼 과거 포항제철소 공해 집회에 참여했지만 A사의 이익금을 받지 못한 주민들에게 승소 사실을 알리는 것은 물론, A사와 포스코의 거래 내역 등을 공개하도록 하는 소송도 제기할 계획이다.
해도동지킴이 관계자는 “시위에 가담했던 주민 전체에 돌아갈 돈을 십 수년 동안 몇 명이 가로채고 있는데도, 포스코는 계속 돈을 벌 수 있게 눈감아 주고 있다”며 “소송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A사의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A사와 포스코의 거래 관계 등을 명백하게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