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 가격 고공행진에 일본서도 ‘밀가루 대신 쌀가루’ 뜬다

입력
2022.05.19 15:33


국제 밀 가격 급등의 영향으로 일본에서 밀가루 대신 쌀가루로 빵 등 가공식품을 제조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쌀에는 글루텐이 들어있지 않아 소화가 잘되고 거의 대부분 수입되는 밀과 달리 자급률이 높다. 그러나 자국산 쌀 가격은 물론 제분 비용도 높아 걸림돌이 되고 있다.

19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최근 수입 밀 가격이 기록적인 오름세를 보이는 가운데 쌀 가격은 안정세를 유지하자 식품업계가 쌀가루를 이용한 가공식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가 제분업체 등에 판매하는 수입 밀 가격은 국제 밀 가격 급등을 반영해 지난해 10월 19.0%, 올해 4월 17.3%나 잇따라 올랐다. 상당수 식품업체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상품가격 인상을 단행하는 와중에 상대적으로 저렴해 보이는 쌀가루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이다.

쌀가루를 생산하는 '미타케식품공업'의 스즈키 리사코 기획총괄실장은 이런 변화를 3월부터 느꼈다고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이미 높았던 밀 가격이 더 오르자 식품업체와 대형 슈퍼마켓 체인에서 "밀 대신 쌀로 상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 "쌀가루 상품을 제안해 달라"는 문의가 쇄도했다. 스즈키 씨는 "쌀가루는 양도 가격도 안정돼 있고 '국산'이라는 부가가치도 있다"며 "수입 밀 가격 상승을 기회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쌀가루를 사용한 가공식품이 속속 선보여지고 있다. 니혼햄이 3월 출시한 '모두의 식탁 나폴리탄'은 쌀가루 면을 사용한 파스타 제품이다. 제과업체 고이케야는 같은 달 포테이토칩처럼 생겼지만 감자 대신 쌀가루를 사용한 스낵 제품을 내놓았고, 시키시마제빵은 밀가루와 쌀가루를 동시에 사용한 롤빵 제품을 출시했다. 일반적으로 쌀가루를 사용하면 빵은 쫄깃하고 튀김은 더 바삭한 식감을 낼 수 있다. 글루텐이 함유돼 있지 않아 소화도 잘된다.

쌀가루를 사용한 가공식품이 늘어나면 쌀 재배 농가에도 보탬이 된다.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쌀가루용 쌀 수요량은 2017년까지 2만 톤 정도였지만 올해는 4.3만 톤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일본에서 쌀의 1인당 소비량이 2020년 50.7㎏으로 60년 전에 비해 반토막 난 상황이라 쌀가루 소비 증가는 농업에 긍정적이다.

다만 쌀가루의 빠른 보급에는 높은 제분 비용이라는 걸림돌이 있다. 밀은 연해서 제분이 쉬운 반면, 쌀은 딱딱해 물에 담가 연하게 만든 뒤 건조시켜 다시 제분하는 등 과정이 번거롭다. 또 밀가루는 연간 수요량이 500만 톤을 넘는 데다 일본 국내에 몇 개뿐인 제분업체가 대량 생산하지만, 쌀가루용 쌀 수요량은 4만 톤에 불과하고 제분도 여러 중소기업에서 한다.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당 제분 비용은 밀가루가 50~70엔 정도지만 쌀가루는 60~300엔이나 든다.

태국산 등에 비해 일본산 쌀가루는 가격이 비싸 해외시장 개척도 쉽지 않다. 신문은 글루텐이 없다는 점을 알리는 'Non 글루텐 쌀가루 제3자 인증 제도' 등 안전한 식재료로서 쌀가루를 홍보하는 정부의 대응이 "이제 막 시작됐다"고 평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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