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소자 몰래 촬영한 PD들, 유죄에서 무죄로… 대법 판단 이유는

입력
2022.05.10 14:00
지인이라 속이고 교도소서 접견 과정 촬영
촬영용 손목시계 반입… 하급심 유죄 판단
대법 "단속 부실, 평온 해치지 않아" 파기환송

재소자의 지인이라고 신분을 속이고 교도소에 촬영장비를 몰래 반입해 접견 과정을 촬영한 PD들에게 대법원이 공무집행방해와 건조물침입죄를 물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교도관이 신분을 의심하고도 관리·감독을 철저하게 하지 않은 정황 등을 고려하면 PD들에게 죄를 묻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최근 위계공무집행방해와 건조물침입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외주제작업체 PD A씨와 B씨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무죄 취지로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남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두 사람은 2016년 4월 방송사 시사프로그램 제작을 맡아 노인 대상 소매치기 사건을 취재하던 도중 진주교도소에 수감된 피의자를 접견하면서 손목시계 모양의 녹화·녹음 장비를 몰래 들여와 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두 사람은 교도소 출입 당시 피의자의 지인인 것처럼 신분을 속였고, B씨는 같은 범행을 두 차례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두 사람은 혐의를 부인했다. 이들은 △교도관이 검사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고 △교도소는 누구든지 출입이 가능한 관공서라 침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수용자를 촬영한 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으므로 정당행위라고도 했다.

1심은 두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두 사람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진주교도소의 인적·물적 설비 부족과 적발이 어려운 촬영장비 형태 등을 고려하면 교도관이 장비 반입 사실을 적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두 사람이 위계공무집행방해죄를 저질렀으므로 건조물침입죄도 (자연히) 적용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정당행위 주장에 대해선 "불법적 행동으로 수용자들의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촬영금지 조치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면 2심은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만 무죄로 판단했다. 교도관들이 두 사람의 신분을 의심했지만 소지품 등을 검사하지 않고 구두로 기자 여부를 확인한 정황을 고려하면 교정시설에서 단속 업무를 못 했기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다만 건조물침입죄에 대해서는 출입 통제를 어긴 게 맞으므로 유죄로 봤고, 정당행위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건조물침입죄까지 무죄로 판단했다. 객관적·외형적으로 '사실상의 평온상태'가 침해돼야 주거침입죄가 성립한다는 올해 3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을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설령 피고인들이 수용자와 접견하며 대화 장면을 녹음·녹화할 목적으로 교도소에 들어간 것이어서 관리자가 이런 사정을 알았더라면 출입을 승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정이 인정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사실상의 평온상태를 해치는 방법으로 교도소에 출입했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 또한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박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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