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영화 속 모든 이야기는 결핍을 다룬다. 누군가는 돈이 부족해서 억울한 상황에 놓이고, 누군가는 인복이 없어서 위기에 내몰린다. 평생을 부족함 없이 살다 생을 마감하는 주인공의 굴곡 없는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재미나 감동을 선사하기 어렵다.
'괴이'가 매력적인 이유는 주인공들의 결핍이 유난히 두드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기훈(구교환)과 수진(신현빈)에게는 딸을 잃었던 그날부터의 기억이 곧 지옥이다. '괴이'의 두 작가들은 괴이한 일들이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주인공들이 내적 상실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했다.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괴이'의 극본을 맡은 연상호 류용재 작가는 지난 4일 진행된 화상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했다. '괴이'는 저주받은 불상이 나타난 마을에서 마음속 지옥을 보게 된 사람들과 그 마을의 괴이한 사건을 쫓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초자연 스릴러다.
'괴이'에서는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 주요한 소재 중 하나로 사용된다. 영화 '부산행' '반도' 드라마 '지옥' 등 연 작가가 참여했던 많은 작품들에서도 부성, 모성은 주요한 키워드로 등장했다. 이에 대해 연 작가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무언가를 하나 남긴다면 어떤 것이어야 할까'라는 고민을 갖고 있는 듯하다. 다른 세대에 대한 사랑 같은 게 남아야 무너져가는 세상이 유지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모성, 부성이 나오는 듯하다"고 말했다.
'괴이'가 연니버스(연상호+유니버스)의 답습이라는 혹평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내가 이 작품에서 돋보일 줄 몰랐다. 난 제작자도 아니고 감독도 아니고 공동 극본가 중 하나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적게 참여해도 내 작품처럼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걸 최근에 깨달았다. '신선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을 만들어내야겠다' '치열하게 생각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배우들은 자신만의 색깔로 캐릭터를 소화하며 작품에 매력을 더했다. 연 작가는 앞서 '반도'를 통해 구교환과 호흡을 맞췄다. "'반도'에서는 구교환 배우가 개성 있는 조연이었다. 그 영화를 찍으면서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연 배우로서 구교환 배우의 역량도 발휘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연 작가의 설명이다. 구교환이 예상대로 기훈 역을 잘 소화해냈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류 작가는 구교환이 기훈에 생동감을 부여해 줬다고 했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분석하기도 했다. 류 작가는 "신현빈 배우는 수진의 상처를 눈빛, 분위기만으로 표현해 줬다. 김지영 배우는 내적으로 단단해 보이는 면이 있는데 그런 부분이 캐릭터랑 잘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이어 "곽동연 배우는 날카로운 연기를 잘 해줬다. 처음 등장 장면을 봤을 때 연 작가님과 함께 놀랐다. 잘 성장한 아역 출신 남다름 배우도 기존에 보여줬던 모습과는 다른 결의 연기를 보여줬다. 후반부에 용주(곽동연)와 도경(남다름)이의 서사가 나올 때는 두 분의 연기톤이 멜로 같은 느낌도 주더라"며 배우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괴이' 속 기훈은 딸의 인형을 차에 매달고 다닌다. 그는 수진이 위험에 처했을 때 "하영아, 엄마한테 가보자"라고 말한 뒤 고장 난 차에 시동을 건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차가 출발한다. 기훈 수진이 귀불에 맞서는 장면에서도 인형이 보인다. 연 작가는 "차를 인형이 조종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또한 거대한 악귀가 들린 귀불과 사람 모습을 하고 있지만 작은 천 쪼가리 인형으로 표현된 하영이의 대결을 그리려고 의도했다"고 밝혔다.
원래 대본에 없던 장면이 추가되기도 했다. 연 작가는 "수진과 기훈이 차를 타고 가는 장면이 없었다. 스님 신에서 '둘이 잘 살면서 뭔가 찾아다닌다더라'는 식으로 끝나는 거였다"고 했다. 스님이 기훈 수진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한 뒤 펼쳐지는 요괴의 사체를 발견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여운을 선사했다.
연 작가는 귀불 사건 후 기훈 수진의 모습에 대해 "시즌2를 암시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품은 다음 시즌으로 가며 성숙해진다고 생각한다. 기훈과 수진이라는 좋은 캐릭터가 만들어졌으니 다음 화가 제작된다면 두 사람의 특성을 잘 담은 정교한 퍼즐 형태의 오컬트 스릴러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류 작가는 "이후의 이야기는 '괴이'와 다른 톤에서 기훈과 수진이 자신의 능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하며 기이한 현상들을 조사하는 내용으로 펼쳐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연 작가는 '괴이'를 통해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해 앞으로 그가 선보일 새 작품들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연 작가는 "30분짜리 6부작을 해봤다는 게 큰 경험이다. 그 형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고 했다. 또한 "여러 반응은 다음 작품을 할 때 참고하는 것 중 하나다. 앞으로 작품을 할 때 밑거름이 되는 좋은 의견들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창작자로서의 열정을 내비쳤다.
연상호 류용재 작가의 정성을 담은 '괴이'는 지난달 29일 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