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엄친딸(엄마 친구 딸)'이 꽤나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이 말이 처음 등장했을 땐 '왜 엄마 친구 자식들은 다들 그렇게도 완벽하고 잘났을까'라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주변 잘난 자식들의 사례를 취합하고 과장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이는 교육적인 악영향은 물론 자식에게 정신적 상처를 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결론이다. 아이의 의지를 길러주려다 오히려 열등감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세상 모든 부모는 자식에게 기대를 품는다. 특히 모녀관계에서는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나기 쉽다. 깊은 유대관계 속에서 어머니가 딸에게 자신의 가치관과 감정을 주입시키는 경우가 많다. 딸은 자유를 빼앗겼다고 느끼고 어느 순간 어머니와의 갈등도 깊어진다.
지난달 20일 개봉한 영화 '앵커'는 극단적인 모녀관계를 통해 이를 여실이 보여준다. 스릴러라는 장르적 재미를 떠나 엄마(이혜영)와 딸 세라(천우희)의 관계가 참담함을 느끼게 한다. 엄마는 딸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 했고, 딸이 자신의 꿈을 대신 이뤄주길 기대한다. 딸은 엄마에게 연민의 감정을 가지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모습에 부담과 미움을 느낀다. 모녀 사이의 애증과 트라우마의 발현은 결국 비극을 빚어낸다.
극 중 세라는 메인 뉴스 앵커로 활동 중인 커리어우먼이다. 한강뷰 아파트에 살고 펀드 매니저와 결혼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산다. 하지만 내면은 열등감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남편과의 관계도 거의 남과 다름없다. 세라의 관심사는 오로지 일이다. 스타 앵커 자리를 놓칠 수 없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언제 뒤쳐질까 걱정한다.
그런 세라를 극한으로 내모는 이는 엄마다. 일의 성취를 위해 절대 아이도 갖지 못하게 한다. 생방송 직전, 살인 예고 제보 전화를 받은 세라를 자극해 끔찍한 사건 현장으로 보내는 것도 엄마다. 그곳에서 세라는 시신을 발견하고 환영과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사건 현장 취재로 인해 승승장구하는 듯싶지만 세라는 점점 공포감에 휩싸여 가고,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에 이른다. 극 후반부엔 엄마와 딸의 일체화가 일어나며 관객을 충격에 빠뜨린다.
연출을 맡은 정지연 감독은 "제가 여자이고 딸이기 때문에 겪은 애증 관계와 엄마에게 많은 걸 털어놓지만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갖가지 감정들, 가깝고도 멀었던 시기들을 떠올리며 '앵커'에 반영했다"며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하는 양가적 감정에 많이 공감하고 포커스를 맞췄다"고 털어놨다.
'앵커'를 보면서 부모가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연예부 기자 생활을 시작했을 때, 금융권 임원이었던 아버지와 교사 출신 어머니가 상당히 실망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부모님은 둘째 딸이 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원했다. 어머니는 제법 긴 시간 동안 이직을 권유하기도 했다.
매일 쉬지 않고, 죽도록 열심히 일했던 것도 어쩌면 다른 누구보다 부모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밖에서 아무리 칭찬을 받아도 집에선 자랑스러운 딸이 되지 못하는 현실이 쓰라렸다. 물론 오랜 기간 이 일을 했기에 지금은 부모님도 나를 존중해 주지만 초반 몇 년은 '인정 욕구'에 목말라 있었던 게 사실이다. '앵커'의 모녀관계에 비하긴 어려우나 조금은 공감이 됐던 이유다.
tvN '알쓸범잡'에서 오은영 박사는 부모 자녀 관계에서 가스라이팅이 쉽게 일어난다고 말해 놀라움을 안긴 바 있다. 한 예를 들어 이해를 도왔다. 시험을 망친 두 아이가 있다. 풀이 죽은 아이 A는 "엄마가 알면 얼마나 속상할까 싶어서 마음이 안 좋아요"라고 말하고, B는 "시험 못봐서 아빠한테 혼날까봐 걱정돼요"라고 말한다. 둘 중 가스라이팅을 당한 아이는 A다.
오은영 박사는 "A는 내 마음보다 엄마 마음을 걱정하는 거다. 내가 아닌 엄마가 주체다. B는 '나'를 걱정하는 거고, 이게 더 바람직하다"며 "흔히 부모와 자식 간에도 의도치 않게 가스라이팅이 일어날 수 있다. 주체가 누가 되냐가 중요하다. 양육의 궁극적 목표는 독립"이라고 강조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녀를 훈육할 때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자녀에게 공부와 성공을 강요하는 것이 진정 아이를 위한 것인지, 스스로를 위한 것인지 고민해 볼 문제다.
왜 명문 대학에 진학시키고, 좋은 회사에 취직시키고, 쟁쟁한 집안에 시집 장가를 보내야만 '자식농사를 잘 지었다'는 이야길 듣는지도 의문이다.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 사회 구성원으로 건실하게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엄친딸'이며 '엄친아'이기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