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일 제17대 대선을 앞둔 필리핀에서 '반(反)마르코스' 전선에 선 후보들은 막판까지 단일화를 주저하고 있다. 유력 후보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전 상원의원을 넘어서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는 이유다. 20%대 지지율을 기록 중인 현 부통령 레니 로브레도 후보가 유일한 대항마지만 나머지 후보들의 단일화 의지가 낮다.
2일 필리핀 스타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로브레도 후보는 여론조사업체 '펄스 아시아'가 공개한 후보 지지율에서 23%로 2위를 기록했다. 1위는 56%를 획득한 마르코스 후보다. 마르코스 후보는 3월 조사와 같은 수치를 보이며 지지율을 유지했지만, 로브레도 후보는 1%포인트 하락했다. 3위는 필리핀 복싱영웅 매니 파퀴아오 후보(7%)이며, 4위는 마닐라시 시장인 프란시스코 도마고소 후보(4%)다.
대선 후보들은 마르코스 후보와 반독재 진영, 중립 진영으로 삼등분된 상태다. 반독재 진영은 로브레도ㆍ파퀴아오를 필두로 호세 카브레라 몬테마요르ㆍ레오드가리오 구즈만 등 4명이며, 중립 진영은 도마고소 후보와 어네스토 코르푸브 아벨라ㆍ노베르토 곤잘레스ㆍ판필로 락손ㆍ파이살 만곤다토 등 5명이다. 상위 4명을 제외하고 한 자릿수 지지율이라도 기록한 후보는 락손(2%)과 아벨라ㆍ만곤다토(1%) 후보뿐이다. 나머지는 소수점 이하에 머물고 있다.
마르코스의 독주 체제가 워낙 공고하다 보니 다른 후보들의 연대 의지는 떨어지는 모양새다. 연일 반마르코스 진영에서 로브레도를 중심으로 단일화를 요구하지만, 파퀴아오 후보 등은 "선거를 완주해 내 정치철학을 필리핀에 알리겠다"며 교섭을 피하고 있다. 후보들의 지지율을 모두 합쳐도 마르코스를 넘지 못해 단일화 효과가 미미할 것이란 분석도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선거운동 초반 마르코스 가문을 강하게 비판하던 파퀴아오 후보 등도 최근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다"며 "로브레도를 제외한 대다수 후보들이 차기 정권에 보복 당하지 않기 위해 '반독재 후보 단일화'가 아니라 '정치 생명 유지' 쪽으로 방향을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마르코스 후보는 대세 굳히기 행보에 나섰다. 전날 케손시티 유세 현장에서 "나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상대 측과 부딪치지 말고 자제해주길 바란다"며 "지금은 적이지만 우리는 필리핀이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 모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