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가격 상승과 부품 수급 차질 등을 포함한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더해지면서 제품 소재 확보에 필요한 재활용 사업도 재조명되고 있다. 과거엔 재활용에 들어간 비용이 비쌌지만 유가 등을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생산단가 측면에서 큰 차이가 없어진 데다, 부품 수급처 다변화를 위해서도 재활용 사업이 효과적이란 진단에서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재 재활용 사업에 가장 적극적인 분야는 국내 배터리업계다. 글로벌 전기차기업인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리튬 가격이 미친 수준까지 올랐다”고 말할 정도로 전기차 배터리 제조의 핵심광물인 니켈과 리튬의 가격은 전날 기준 각각 톤(t)당 3만3,300달러, ㎏당 435.5위안을 기록해 1년 전에 비해 각각 98%와 440% 폭등했다.
이에 따라 국내 배터리업체들은 폐배터리 분해로 내부 광물을 추출하는 사업(BMR)에 주력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폐배터리 재활용 업체인 ‘리 사이클’과 협력 관계를 구축, 다음 달까지 5,000만 달러를 투자할 예정이다. 삼성SDI는 BMR 사업을 위해 관련 선도기술을 보유한 성일하이텍과 협업을 추진 중이고, SK이노베이션은 2025년부터 해외 폐배터리 공장 가동을 목표로 투자 확대에 들어간 상태다.
학계 연구도 배터리업계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은 이날 전기차 폐배터리에서 리튬과 니켈 등 핵심원료를 98% 이상의 고순도로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BMR는 높은 해체·추출 비용이 걸림돌이었는데, 이번 기술 개발로 사업에 가속도가 붙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희소자원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서면 원재료 가격 상승과 수급 불안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BMR는 원재료의 안정적 공급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국내 석유화학업계는 폐플라스틱 재활용에 눈을 돌리고 있다. 플라스틱이나 합성고무, 건축자재 생산 등에 필수로 활용됐던 에틸렌 가격이 국제 유가 상승과 더불어 최근 2.5배가량 급등하자, 비용적인 측면에서 폐플라스틱 재활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듯, GS칼텍스는 배달용기나 페트병 등을 재활용한 복합수지 생산에 나섰고, 롯데케미칼은 성남시와 플라스틱 재활용을 위한 지역클러스터 조성 협약도 체결했다. 폐플라스틱 재활용에 속속 뛰어든 석유화학업계에선 특히 ‘열분해유’에 주목하고 있다. 열분해유는 폐플라스틱을 고열로 분해해 추출한 원료유다. 석유화학제품의 기존 제조 공정에 들어가는 원유 대신 열분해유를 투입하면 그만큼 원유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 현재 SK이노베이션과 현대오일뱅크 등이 자사 원유 정제공장에 열분해유를 투입해 재활용하는 실증사업을 벌이고 있다.
자동차·전자 업계에서도 재활용 사업은 한창이다. 차량관리 사업을 하는 SK네트웍스는 지난 19일 현대하이카손해사정과 손잡고 ‘수입차 에코(ECO) 부품 공급’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사고·수리 차량의 범퍼와 도어, 트렁크 등을 재활용한 에코 부품을 보험사 가입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다. 수입차 부품 수급 난항으로 사고 수리 지연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마련됐다. 삼성전자에선 지난 3월 출시한 갤럭시 S22 시리즈와 갤럭시탭 S8 시리즈에 폐어망을 재활용한 친환경 소재를 적용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본격화하면서 재활용 사업이 더욱 주목받는 점도 있다”며 “향후 글로벌 희소자원 확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점에서 기업들의 재활용 사업 진출은 정해진 수순으로 보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