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하다"며 후임병 집단구타, 성고문까지… 또 터진 해병대 가혹행위

입력
2022.04.25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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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권센터 "선임병 3명이 생활관 막내 괴롭혀"
"증거인멸 우려에도… 인권 존중 운운 불구속"
해병대 "혐의 대부분 시인해 기소 의견 송치"

해병대 최전방 부대인 연평부대에서 선임병 3병이 후임병을 상습 구타하고 성고문 등 가혹행위를 했다고 인권단체가 의혹을 제기했다. 단체는 해병대 군사경찰이 가해자들을 불구속 수사하고 있어 증거 인멸이 우려된다고도 지적했다.

군인권센터가 25일 서울 마포구 센터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밝힌 내용에 따르면, 13명이 기거하는 생활관 내 기수가 가장 낮은 피해 병사는 지난달 중순부터 A병장, B상병, C상병 등 생활관 선임병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C상병은 '심심하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뒤통수나 뺨을 때렸고, B상병과 C상병이 연이어 피해자를 자기 침대로 불러 폭행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성적 괴롭힘은 지난달 26일 두 차례 있었다. A병장과 B상병이 "격투기를 가르쳐주겠다"며 피해자를 침대에 눕힌 뒤 젖꼭지에 빨래집게를 꽂거나 종아리에 모욕적 문구를 적었다. B상병과 C상병은 샤워실에 전기이발기(속칭 바리깡)를 들고 들어와 피해자의 음모를 깎았다. 같은 날 밤 피해자는 선임이 손으로 비빈 스파게티를 강제로 먹기도 했다. 센터 관계자는 "해병대의 오랜 악습인 '식고문'이 벌어진 것으로, 피해자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먹어야 했다"고 말했다.

센터는 다른 부대원들이 가혹행위를 방관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6일은 주말이라 병사들이 생활관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제지하는 이는 없었다. 음모가 깎인 피해자가 흡연실에서 B상병의 위협으로 바지를 벗었을 때도 선임들은 웃기만 했다고 한다. 임태훈 센터 소장은 "부대 간부도 이런 상황을 대략 인지하고도 묵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런 사실은 피해자가 지난달 30일 부대 간부에게 보고하면서 드러났고, 가해자들은 해병대 군사경찰대에서 불구속 수사를 받고 군검찰에 송치됐다. 센터는 피해 사실이 김태성 해병대사령관에게도 보고됐지만 구속 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임 소장은 "증거 인멸을 막기 위해서라도 구속 수사가 필요했지만, 사령부는 (가해자) 인권 존중이라는 아전인수식 행태를 보였다"고 말했다. 센터는 △가해자 3인의 즉각 구속 수사 △불구속 수사 이유 규명 △연평부대 해체 및 부대 진단 실시 △해병대 인권침해 사건 처리 프로세스 점검 △책임자 전원 엄중 문책을 촉구했다.

해병대사령부는 “3월 말 피해자와 면담해 관련 내용을 인지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즉시 분리 조치했다”며 “가해자들이 군사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대부분 인정했으며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어 불구속 수사 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법과 규정에 따라 사건을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며, 유사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병영문화 혁신 활동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나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