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탄저균 밝힌 미생물학자 "균주 관리 철저해야 팬데믹 대응 효과적"

입력
2022.04.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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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카임 미국 노던 애리조나대 교수 인터뷰
균주 유전체 분석하면 감염병 선제 대응 가능
유전체 정보 공유되면 맞춤형 보건정책 도움
"엄격한 균주 관리가 출처 속이는 행위 줄일 것"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감염병 대처방안에 대한 논의가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다. 그중에서도 균주의 유전 정보를 해독해 발병 패턴을 예측하는 '유전체 분석' 기법은 가장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질병관리청 주도로 고위험 균주 관리를 강화하는 감염병예방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균주 제출 의무화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폴 카임 미국 노던 애리조나대 교수는 감염병 대응과 범죄예방 수단으로 '균주 관리'를 강조해온 미생물유전학자다. 그는 2001년 9·11 테러 발생 당시 유전체 분석을 통해 테러에 사용된 탄저균과 그 출처를 밝혀냈다. 2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카임 교수를 만나 효과적인 균주 관리 방법에 대해 물었다.

-병원체 균주 관리는 왜 필요한가.

"고위험 균주를 다루는 연구진과 시민들을 보호해야 한다. 균주가 테러집단 손에 들어가는 것도 막아야 한다. 목적이 무엇이든 균주의 유전체 분석은 기본이다."

-유전체를 분석하면 감염병 대응이 가능한가.

"변화무쌍한 팬데믹 발병 패턴을 예측해 유연하게 대책을 세울 수 있다. 내 연구실도 10만여 개 코로나 유전체의 염기서열을 분석했고, 이를 통해 실시간으로 어떤 변종이 창궐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한 도시에서 매년 수천 건의 살모넬라균 감염이 발병하고, 그중 40%가량이 동일 유전체에서 비롯됐다면, 선제적으로 그 출처를 없앨 수 있다. 바이러스의 시공간 위치를 일일이 증명하지 않고 유전체 분석만으로 출처를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유전체 분석을 통한 균주 관리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효과가 있었나.

"아프리카에서 변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했을 때, 유전체 정보가 빠르게 글로벌 데이터베이스에 들어왔다. 덕분에 확산 과정을 실시간으로 파악 가능했다. 변종 출현 사실을 알아야 기존 백신의 효과를 판단할 수 있다. 오미크론 변종이 일상화될 것이란 사실도 유전체 분석으로 알게 됐다. 각국 정부는 이를 토대로 맞춤형 보건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

-유전체를 공유하는 글로벌 데이터베이스가 있나.

"유전자 염기서열은 전 세계에서 똑같이 사용하는 공식 언어다. 이 때문에 글로벌 유전체 데이터베이스가 여러 개 만들어져 있다. 대부분 유럽이나 미국에서 관리 중이지만 한국과 일본, 호주 등 아시아 국가들도 구축 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데이터베이스는 국가나 기관에서 자발적으로 균주를 제출해 구축되는 건가.

"모든 질환에 대한 유전체 정보 제출이 의무는 아니지만, 공공이익을 위해 일부는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코로나19의 경우 중국 정부가 출처 조사를 제한했다. 유전체 분석을 통해 출처를 정확히 알면 효과적인 대비가 가능하지만 중국 정부가 협조하지 않았다.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상황이 오면 불이익을 우려해 같은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데이터가 공개되면 어떤 불이익이 있는 건가.

"변종 바이러스 출현 국가 입장에선 데이터 공개가 좋을 리 없다. 시민들 이동이 제한되는 등 해당 국가에서 원치 않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정치인과 과학자는 늘 대척점에 있다. 다만 공중보건 관점에서 보면 균주 관리를 포기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과학자뿐 아니라 시민들도 병원체의 위험성을 판단할 권리가 있다. 데이터 공개의 중요성은 부정할 수 없기에, 현명한 대응책을 찾는 게 정치인 역할이다."

-한국에선 20일부터 감염병예방법 개정안이 시행돼 부정한 방법으로 고위험 병원체 취급 허가를 받았다가 적발되면 허가가 취소된다. 균주 관리가 엄격해질 것으로 보나.

"미국에선 보톡스 원료인 보툴리눔 균주 관리가 엄격하다. 연방정부에서 사업허가를 받은 업체만 보툴리눔 균주를 배양하고 보유할 수 있는데, 보툴리눔균은 생물학적 무기로 악용될 가능성이 높아 이를 허가받은 실험실은 소수에 불과하다. 관련 사고나 테러공격이 발생하면 해당 실험실이 1차 수사 대상이 된다. 한국은 공중보건 수준이 높아 저렴한 비용으로 데이터 구축이 가능하고, 우수한 염기서열 분석업체도 많다. 유전체 정보 제출까지 의무화되면 균주 출처를 속이는 행위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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