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호랑이숲 '범궁 남매' 등장에 팬들 환호·탄성이 이어졌다

입력
2022.04.24 10:00
지난 15일 백두대간수목원서 반년만에
수목원, 석 달여 대대적인 시설개선
에버랜드 출신 범궁남매 보려고
 입장객 3배로 폭증  인기 실감

겨우내 조용하던 경북 봉화군 춘양면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이 요즘 갑자기 북적북적해졌다. 봄이 오면서 그냥 수목에 잎이 나고 꽃이 피기 때문만이 아니다. ‘호시탐탐’ 호랑이숲에 우리나라 동물계의 아이돌스타 ‘범궁이’가 컴백했기 때문이다.

범궁이는 수컷인 태범과 암컷 무궁 호랑이 남매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다. 2020년 2월 에버랜드에서 태어난 백두산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 한국호랑이)다. 판다 ‘푸바오’와 함께 절정의 인기를 누리다가 지난해 10월 머나먼 이곳에 온 ‘유학생’이다. 어미 ‘건곤’이가 지난해 6월 예기치 않게 오둥이 동생을 낳았기 때문이다. 에버랜드와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측은 범궁 남매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한국호랑이 연구 등을 위해 2년간 봉화에 보내기로 협약했다.

지난해 10월25일 새벽 에버랜드를 출발, 특수 차량에 실려 이날 낮 호랑이숲에 도착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거쳐 거의 반년 만에 대중에 공개된 것이다.

백두대간수목원, 대방사장에 구분철책 등 시설개선

수목원 측은 범궁이 컴백 등을 위해 지난 1월부터 호랑이숲 운영을 중단하고 시설을 개선했다. 하나로 된 대방사장에 철책을 설치, 2개로 나눴다. 더위를 피하기 위한 연못과 그늘동굴, 행동풍부화를 위한 놀이기구도 설치했다. 범궁이 남매가 나올 공간에는 에버랜드에서 가지고 놀던 공도 매달아 놓았다.

범궁이가 대중에게 다시 선보인 것은 지난 15일 오전. 평일인 데도 전국의 팬들이 몰려왔다. 일부 ‘팬클럽’은 축하 떡을 맞춰와 수목원 직원과 관람객들에게 돌렸다. 범궁이 ‘출근’시간인 10시 이전에 호랑이숲 앞은 장사진이었다. 범궁이가 멈칫멈칫하며 모습을 드러내자 환호성을 질렀다. 소리에 놀라 멈추자 안타까움의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이날부터 백두대간수목원은 북새통이다. 수목원 관계자는 “호랑이숲 재개장 이전인 9, 10일 주말에는 수목원 전체 입장객이 900명 정도였는데, 개장 이후인 16, 17일엔 2,500명으로 3배 가까이나 됐다”고 말했다. 다는 아니지만 범궁이 컴백 덕분이다. 수목원이 자동차로 서울시청서 거의 4시간, 대구에서도 2시간30분가량 걸리는 오지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숫자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호랑이숲은 트램을 타고 가더라도 하차해서 25분은 걸어야 하는 곳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900명이던 주말 입장객, 2,500명 이상으로 급증

범궁 남매는 특유의 장난끼와 투덕거리면서도 사이 좋은 오누이의 모습을 보여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태범이는 컴백 첫날부터 통나무 목마에 감아 둔 소가죽을 벗겨내 연못에 감췄다. 이내 동생 무궁이가 찾아내 손수건처럼 입에 물고 뛰어다니기도 했다. 태범이의 통나무 목마 소가죽 벗기기는 그치지 않았다. 덕분에 사육사들은 매일 아침 목마에 소가죽을 새로 씌우느라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범궁이는 그냥 백두산호랑이겠지만, 팬들에게는 다르다. 수목원 일반직원은 물론 사육사들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을 정도다. 수컷인 태범이다 더 크다는 것 말고는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지만, 둘 사이를 정확하게 구분한다. 사람의 지문처럼 호랑이는 줄무늬가 다 달라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태범이는 화살촉 모양의 눈썹과 검정색 꼬리 끝 털로, 무궁이는 一자형 눈썹과 하얀색 꼬리털로 쉽게 구분된다고 한다. 열성팬들은 이처럼 ‘쉽게’구분할 수 있는데 잘 모르겠다는 어른들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하다. 지난 22일 낮 호랑이숲 앞에서는 딸이 엄마에게 “엄마는 그렇게 보고도 구분을 못해? 잘 봐. 무궁이 얼마나 예뻐. 태범이 정말 잘 생겼잖아요. 무궁이는 그냥 호랑이가 아냐”라며 구분하는 방법을 설명하느라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범궁이 인기와 비례해 민원도 급증…

범궁 남매의 인기만큼 민원도 상상초월이다. 가장 큰 민원은 호랑이 방사 시간인 출근명부를 왜 사전에 공개하지 않는가이다. 이 같은 문의전화로 수목원 콜센터 업무가 마비될 정도라고 한다. 지난 15일 이후 문의전화의 80~90%가 이 같은 내용이다. 야행성인 호랑이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방사장에 나온 호랑이가 ‘왜 하루 종일 잠만 자느냐’는 민원이 그것이다.

김은아 수목원 고객지원팀장은 “관람객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호랑이가 출근하기 위해선 2~3시간의 사전 준비가 필요하고,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결근’이나 ‘조퇴’할 수도 있다”며 “출근 호랑이와 시간이 매일매일 달라질 수 있는 만큼 홈페이지나 전화 문의에 미리 답변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오전 10시~오후 4시(하절기 오후 5시) 사이에 6마리의 호랑이를 적절하게 방사한다는 설명이다.

수목원 호랑이숲에는 현재 모두 6마리의 호랑이가 있다. 범궁남매와 한청(2005년생 암컷)ㆍ우리(2011년생 수컷) 커플(?), 2013년생 한(수컷)ㆍ도(암컷) 남매가 그 주인공이다. 한청은 나이가 많아 올해부턴 내실에서 주로 지낼 것으로 알려졌다. 엄청난 머리 크기로 유명한 한과 유달리 수줍어하는 도는 남매이지만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어서 호랑이숲은 범궁 남매의 독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과 도는 2013년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푸틴 러시아대통령이 기증해 ‘푸틴 호랑이’로 알려진 로스토프(수컷)와 펜자다. 로스토프는 2013년 큰 사고를 쳐 지난해 초까지 격리됐다가 다시 일반에 공개됐다.

"관람객보다 호랑이 입장에서…출퇴근 명부·시간 공개 불가"

대방사장을 2개로 나눴지만, 당분간은 동시 방사는 2마리로 제한할 방침이다. 철책으로 차단돼 있어도 수컷인 한과 도의 기싸움 때문에 자칫 불상사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열이 안정되면 동시에 4마리를 방사할 계획이다.

하지만 수목원 측은 호랑이숲은 일반 동물원과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수목원 관계자는 “백두대간수목원은 ‘관람’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종보전을 위한 유전자원 보호가 우선인 곳”이라며 “호랑이를 사랑하는 만큼 호랑이숲 호랑이는 서커스단 호랑이가 아니며, 사람보다는 호랑이 입장에서 배려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호랑이숲이 3.8㏊로 국내에선 가장 넓지만 호랑이 입장에서는 좁기 그지없는 공간으로, 소리를 지르는 등의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며 “장애물 없이 호랑이를 잘 관찰할 수 있도록 망원경과 와이드비젼 등을 갖춘 전망대 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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