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지지 방문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했다. 러시아에 우호적이었던 그의 과거 행보가 현 참상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게 이유라는 분석이다.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자신의 실책을 인정하긴 했지만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앙금은 가시지 않은 탓에, 유럽 최대 경제 대국 원수의 방문이 퇴짜 맞는 ‘굴욕’을 당했다는 평가다.
12일(현지시간)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 등에 따르면,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국빈 방문 중인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방문하려 했지만, 그쪽에서 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초 그는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을 비롯, 발트 3국(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ㆍ리투아니아) 정상과 함께 13일 키이우를 찾을 예정이었다. 이들이 우크라이나와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정작 우크라이나가 이를 거절했다. 독일 최대 타블로이드 빌트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키이우를 방문하더라도 만나지 않겠다고 말했다”며 “그는 환영받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 측은 명확한 거절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외신들은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친러시아 성향을 이유로 꼽는다. 그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집권 당시 두 차례(2005∼2009년, 2013∼2017년) 외무장관을 지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 집권 당시에는 거의 15년간 독일의 대러 정책을 책임지며 러시아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물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도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와 독일을 직접 연결하는 천연가스관 사업 ‘노르트스트림2’ 건설 계획을 주도하기도 했다. 당시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국가는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무기화할 수 있다”며 반대했지만 그는 이 사업을 고수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의 대러 유화 정책이 참상을 불러왔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 역시 자신의 오판을 인정했다. 최근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노르트스트림2에 매달린 것은 나의 실수”라거나 “2001년과 2022년의 푸틴은 완전히 다르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수십 년간 각종 정책을 통해 러시아를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모든 노력이 헛수고였음이 드러났다고 시인한 셈이다. 이런 고백에도 우크라이나는 불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안드리 멜니크 주독 우크라이나 대사는 독일 슈피겔에 “슈타인마이어는 거미줄 치듯 러시아와 많은 거래를 했고, 우크라이나 민족성을 경멸하는 푸틴과 견해를 공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우크라이나 지지 방문 압박을 받는 상황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영국 가디언은 “이번 거절은 숄츠 총리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달리 키이우를 방문하지 않으면서 안팎에서 비난받고 있는 상황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