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2차 하청업체 대표 A(55)씨는 지난해 4월 1차 하청업체의 하도급 계약 담당자인 B씨를 살해했다. B씨 회사에서 하도급을 받아온 A씨는 2020년 4월쯤 일감이 끊기자 'B씨가 커미션을 안 준다고 일부러 일감을 주지 않는다'고 여기며 앙심을 품어왔다.
A씨의 범행은 전광석화였다. 차를 몰고 예고 없이 회사로 찾아가서는, 퇴근하려는 B씨에게 서류봉투를 건네는 척하며 다가가 흉기로 여러 차례 찔렀다. 차에서 내린 지 26초 만에 범행을 끝낸 그는 흉기를 챙겨들고 도로 차에 올라 현장을 빠져나갔다.
지난해 7월 1심 재판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권고 형량의 최대치인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계획 범죄가 아니었다"는 A씨 측 주장을 물리친 것이다.
재판부는 "A씨가 흉기로 B씨의 급소를 집중적으로 찔렀고 음주 상태가 아니었던 점 등에 비춰 범행이 매우 치밀하고 잔혹하다"며 "B씨가 느꼈을 공포와 고통은 상상하기 어렵고 유족 또한 평생 치유하기 어려운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우발적 범행이란 입장을 굽히지 않는 피고인을 향해선 "범행을 진정으로 반성하는지 의문"이라고 질책했다. A씨 측은 "형이 너무 무겁다", 검찰은 "무기징역을 선고해야 한다"며 각각 항소했다.
다섯 달 뒤 항소심은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A씨에게 징역 28년을 선고했다. 1심 때와 달리 계획 범행을 시인한 A씨 측 변론이 감형에 주효했다. 재판부는 A씨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A씨가 잘못을 반성하고 있고 △음주운전 벌금형 외에 다른 전과가 없는 점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밝혔다. 검찰의 무기징역 구형에 대해선 "수형자의 자유를 박탈해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시키려면 선고가 정당화될 수 있는 객관적 사정이 분명히 인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8일 대법원은 지난달 17일 A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여러 가지 사정들을 살펴보면 원심이 징역 28년을 선고한 것이 심각하게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