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 지명자는 7일(현지시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하며 차기 윤석열 정부와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핵폐기 방안과 관련해선 미국 행정부가 가급적 사용하지 않았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용어를 꺼내, 향후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변화를 예고했다.
골드버그 지명자는 이날 미 상원 외교위 인사청문회에서 "북한 CVID는 미국의 비확산 목표와 부합한다"며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지만 우리가 계속 노력해야 하고 매우 단호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을 두고는 유엔 결의안과 국제 합의를 위반하는 "악당 정권"(Rogue regime)이라고 평가하며 "CVID가 북한에 맞서기 위한 억제 정책과 한미 동맹의 심화 및 확장과도 합치한다"고 밝혔다.
다만 골드버그 지명자가 CVID를 먼저 거론한 것은 아니었다. 브라이언 샤츠 상원 의원이 "CVID가 달성하기 어려워 훌륭한 목표라고 말하기를 꺼린다"고 지적하며 의견을 묻자, 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CVID 언급이 나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사실상 CVID를 추구하면서도 그동안 북한이 극도로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이 용어 대신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해 왔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의도였다. 간혹 유럽연합(EU), 일본과 내는 공동 성명,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CVID라는 표현이 들어가기도 했으나 독자 성명에선 쓰지 않았다.
하지만 골드버그 지명자가 '대북 강경파'이자 '대북 제재 전문가'로 통한다는 점에서 'CVID 소환'은 의미심장하게 해석되고 있다. 최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등 잇따른 도발과 맞물려 바이든 정부의 대북 태도에 미세한 변화를 시사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골드버그 지명자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09, 2010년 미 국무부 유엔 대북 제재 이행 담당 조정관을 지내며 북한으로 밀반입되던 전략물자를 차단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미국은 제재 과정을 통해 다자 간 비핵화 대화에 북한이 돌아오도록 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제재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골드버그 지명자는 북한의 ICBM 시험 발사를 두고도 "터무니없고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은 매우 문제적이고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 또 대북 제재와 관련해 "제재가 작동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제재) 그 자체로 정책은 아니다. 미국과 세계의 영향력과 힘이라는 다른 요소와 병행돼야 한다"며 한국과 일본, 다른 동맹국들과의 다자 협력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미동맹은 인도·태평양과 이를 넘어선 지역의 평화, 안보, 번영을 위한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한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글로벌 민주주의, 기후 변화 등 여러 과제 대응에서도 미국과 함께했다며 "미국은 21세기 가장 시급한 과제에 대응할 뿐만 아니라 가장 큰 기회를 붙잡기 위해 '글로벌 한국'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골드버그 지명자는 오는 5월 출범하는 윤석열 새 정부와의 협력 의지도 밝혔다. 그는 윤 대통령 당선인의 당선을 축하한 뒤 "인준된다면 윤 당선인 행정부 및 한국 국민과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 국제 규칙에 기반한 질서, 민주주의 원칙, 보편적 인권 존중이라는 공동의 비전을 계속 추진하는 데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