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검정으로 (최종)기술하지 못했지만, 일본군이 설치·관리한 성폭력이라, ‘일본군 위안부’ 용어를 사용하려 했다. 일본 정부 견해를 쓰라는 검정이 더 강해지면, 국정교과서에 가까워질 수 있어 우려된다.”
내년부터 일본 고등학생이 사용할 역사 분야 교과서 검정 결과가 지난달 29일 발표됐다. 지난해 4월 일본 정부의 각의(국무회의) 결정에 따라, 출판사가 제출한 교과서 초안에서 ‘종군 위안부’나 ‘일본군 위안부’ 표현은 ‘위안부’로 고쳐졌고,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무동원을 ‘강제연행’ 또는 ‘연행’이라는 용어는 삭제됐다. 그러나 일부 교과서는 ‘가해의 역사’를 가르치려는 집필진의 노력이 드러났다. 초안에서 ‘일본군 위안부’란 표현을 사용하고,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도 상세히 기술한 ‘일본사탐구’의 대표 집필자인 오오구시 준지(大串潤児) 신슈대(信州大) 교수를 지난 5일 도쿄에서 만나 집필과 검정에 대한 소회를 들었다. 그는 민중의 입장에서 본 현대사를 연구하며, 2012년부터 역사 교과서 집필에 참여해 왔다.
-교과서 초안 중 유일하게 ‘일본군 위안부’ 표현을 썼는데.
“‘종군 위안부’라는 표현은 고노 담화(1993년)에도 나오지만, 역사학 연구에선 ‘일본군 성 노예제’ 등의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일본군이 설치, 관리한 위안소에서 이뤄진 성폭력이기 때문에 일본군과의 관계를 명시하는 편이 낫다고 보고 ‘일본군 위안부’란 용어를 사용하려 했다. 그렇게 하는 편이 학생들도 더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검정에 의해 안타깝게도 생각대로 기술하지 못했지만,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사실을 가능한 한 조사해 학습할 수 있도록 궁리해 썼다.”
-정부 견해를 검정을 통해 강요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나.
“현재 일본에선 민간 교과서 회사가 여러 개의 교과서를 만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선 국정교과서라 할 수 없으나, 앞으로 정부 견해를 쓰라는 검정이 더 강해지면 다양성은 없어지고 점차 국정교과서에 가까워질 수 있어 우려된다. 이번엔 한일 관계사를 둘러싼 사안이었지만, 국회의원이 교과서에 대해 질의할 때마다 정부 견해를 ‘각의 결정’하는 방식이 계속된다면 어찌 되겠는가. 가족제도나 원전 같은 에너지 정책 등에 대해서도 국가 견해에 따라 쓰라고 한다든지, 모든 영역에 이런 방식을 적용하면 교과서는 거의 정부 견해로만 국한될 수 있다. 정부 견해나 대법원 판례가 있는 경우에는 거기에 근거하는 기술을 하라고 요구한 2014년 개정 검정 기준이 자유로운 교과서 제작에 최대 문제가 되고 있다.”
-일부 교과서는 문학 작품으로 위안소 실태를 알리려는 시도를 했다.
“엄격한 검정 속에서도 필진은 가능한 한 역사적 사실을 가르치고 아이들에게 역사를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문학작품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고찰해 가는 시도도 그런 아이디어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검정에 대해 집필자는 몇 가지 대응을 할 수 있다. 고(故)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郎)씨가 교과서검정은 위헌·위법이라며 제도 자체의 시비를 다퉜던 교과서 재판은 유명하다. 이런 직접적 항의뿐 아니라 교과서에 식민지 지배나 일본의 전쟁에 관한 ‘부(負)의 역사’를 생각하는 단서를 가능한 한 기재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직접적 용어를 쓸 수 없거나 자세히 쓸 수 없는 경우에도 관련 사료를 싣거나 적게나마 글을 남김으로써 교사가 가르치거나 아이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단서가 되도록 할 수 있다.”
-교과서를 집필하면서 염두에 둔 부분은 무엇인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기보다는 젠더 관점이나 동아시아 시점, 사회관계의 역사적 변화 등을 배우는 것을 중시했다. 일본군 위안부나 난징대학살 등도 식민 지배의 실태나 중일 전쟁의 특징, 여성이나 가족을 둘러싼 문제나 군대의 성격 등을 복합적으로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용어를 외우는 것만으로는 사실의 정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으므로, 배경을 종합적 관점에서 기술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한국 역사학계와도 교류해 왔다고 들었다.
“교과서 집필을 시작하기 전에 한일 간 역사공통교재에 대한 공동 연구 교류에 참여한 적이 있다. 지금 근무하는 신슈대에서도 학생 교류 세미나를 열고 있다. 이런 교류는 2000년대 초반에 많았다가 최근엔 줄어들었다. 현재 한일뿐 아니라 동아시아를 둘러싼 상황은 어렵지만 과거 교류의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도 학술, 교육, 젊은이들의 교류를 해 나갔으면 한다. 한일 양국 젊은이들이 서로의 역사교과서를 읽어 보는 시도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