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핵무기 사용 원칙에서 기존 ‘전략적 모호성’ 기조를 유지하기로 했다. ‘핵 선제 불사용’ 원칙 천명이나, 오로지 핵공격 대응에만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단일 목적’ 선언을 채택하지 않으면서다.
미 국방부는 30일(현지시간) 공개한 핵태세검토(NPR) 보고서 보도자료에서 “미국과 동맹 및 우방의 핵심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극단적 환경에서만 미국은 핵무기 사용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나 NPR에선 핵무기 사용이 고려되는 ‘극단적 환경’이 무엇인지 언급하지 않는 식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채택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미국의 핵무기를 핵 공격 억지 수단으로 활용하고, 다만 필요하다면 적대국 핵공격 반격에만 사용하도록 제한한다’는 기조의 단일 목적으로 변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핵전쟁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취임 후인 지난해 10월 바이든 행정부가 새 NPR에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을 명기할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동맹과 우방의 우려가 커졌다. 그러나 이후 NPR 발표가 지연되면서 바이든 행정부가 핵무기 사용 원칙을 현상 유지 쪽으로 바꿨다는 보도가 나왔다.
결국 미국은 이번 NPR에서 “미국 핵무기의 근본 역할은 미국과 우리의 동맹, 우방에 대한 핵 공격을 억지하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핵무기 선제 사용 가능성도 열어두면서 한국 일본 등 핵심 동맹에 핵우산을 계속해서 제공하겠다는 의미가 담겼다. 핵 이외에 재래식 무기 등 기타 위협에도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단일 목적’ 대신 ‘근본 역할’이라는 표현에 이 같은 의미가 담겼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25일 보도하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핵무기 사용 원칙 정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가 핵무기 선제 사용 위협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안보 상황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 중국은 2030년까지 핵탄두 보유량을 현재 4배 수준인 1,000기 정도로 늘리겠다고 밝히고,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강행에다 7차 핵실험을 준비하는 등 핵 위협 변수는 계속 증가하는 상황이었다. 미국이 핵무기 사용 원칙을 쉽게 변경하기는 어려웠던 환경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핵무기 사용 원칙과 관련해 단일 목적 폐기 결정을 G7 정상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NPR는 “우리는 전략적 안정성을 계속 강조하면서 대가가 큰 군비 경쟁을 피하고 가능한 영역에서 위험 감소와 군축협정 합의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핵전쟁 위험성을 줄이기 위한 군축 필요성도 강조했다는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