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초등 교사, 상주 할머니들과 ‘깐부’된 사연은

입력
2022.03.31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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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이 되세요."
매듭지은이, 행복 할머니로부터

반지를 구입하면 직접 매듭을 지은 할머니의 자필 메시지 카드가 따라온다. 나팔꽃부터 달달 둥근달, 싸리꽃 할머니까지 별명도 가지각색. 할머니에 의한, 할머니를 위한 이 기업은 "할머니의 일상을 행복하게 만들자"는 미션으로 운영된다. 경북 상주에서 사람 냄새나는 기업 '마르코로호'를 운영하는 신봉국(33) 대표와 이수진(27) 제품개발팀장을 최근 화상으로 만났다.

지금은 지역에서 노인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지만 신 대표는 사실 초등학교 교사 출신이다. 공주교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해 곧바로 교직을 시작한 그는 20대 중반 뒤늦게 간 군대에서 한국의 노인빈곤율과 자살률이 경제개발협력기구(OCED) 국가 중 1위라는 뉴스를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전역 이후 교사 생활을 그만두고 디자인을 전공한 여동생과 함께 고향인 상주로 내려왔다. 그는 "노인 문제를 기반으로 한 소셜벤처를 창업한다면 노인 인구 비율이 높은 상주에서 시작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할머니, 즉 여성 노인에 주목한 이유는 "상대적으로 경제적 빈곤이나 사회적 소외가 높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 대표는 할머니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사업을 고민하다 2015년 반지, 팔찌 등 수공예품을 제작하는 기업을 만들었다. 펀딩에서 나름 긍정적인 반응을 받으며 시작했지만 초기에는 할머님들과 소통하는 것부터 순탄치 않았다. "노인정에서 이 일자리가 왜 필요한지, 제품은 뭔지 설명할 때 PPT를 만든 거예요." 할머니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한 분은 글자를 못 읽으셨는데 마음이 불편하신지 화를 계속 내시더라고요." 이후 수차례 찾아가 말로 풀어 설명했다. 점차 마음을 열고 관계를 쌓아나갔다.

지금은 60세부터 75세 이상까지 13명의 '매듭지은이'가 활동하고 있다. 6년 동안 근무한 분도, 시누이나 동네 지인의 소개로 들어온 분도 생겼다. 직급은 연차에 따라 구분된다. 능력의 차이라기보다는 "할머님들이 먼저 이해하셔야 하기 때문에 체계를 단순화"한 결과다. "사업하면 고객 관점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저희는 오히려 제품을 제작해주시는 할머니 관점을 더 고려해야 한다는 걸 느꼈죠." 신 대표는 이들의 특별한 유대를 일종의 '협력 관계'라고 설명했다. 작업장에서 할머니들과 가장 가까이서 소통하고 있는 이 팀장은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어머님들께 따로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매듭이 튀어나온 데 구슬을 넣으면 된다'는 식으로 꼼꼼하게 피드백을 주신다"고 했다.

일로 맺어졌지만 이제는 작업이 없어서 못 보면 아쉬운 사이가 됐다. 이 팀장은 "2년 동안 일하신 한 어머님은 일주일에 두 번 작업장 오는 날이 제일 기다려진다고 하시더라고요. 작업장 오시는 날에는 꽃단장을 하실 수 있다고요." 할머니들은 일해서 받은 월급을 손주 학업에 보태기도 하지만, 도리어 장날이면 시장에서 양 손 가득 과일을 사와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 이 팀장은 "한 달 정산이 끝나면 어머님들이 성적표 보듯이 확인하신다"며 "새로 온 분이 계시면 얼마 이상 버셨는지 보고 서로 '쏘는 날'을 정하시기도 한다"고 했다. 작업장에서 알게 된 분들끼리 동네 산책을 다니시기도, 각자 집에 방문을 하시기도 한다.

할머니들이 만든 수공예품의 매출액 일부는 필요로 하는 곳에 기부된다. 고객이 제품을 구매할 때 유기동물 보호, 소방관 복지 증진 등 기부처를 직접 선택하는 구조다. 신 대표는 "사회참여의 수단으로 이런 일자리를 만들었는데 한 단계 나아가서 하시는 일로 자긍심을 느끼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 팀장은 "또 다른 곳에 기부가 된다는 걸 아시고 무엇보다 자존감이 높아지셨다"고 전했다.

신 대표의 목표는 상주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할머니의 일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거다. "간단하지만 어려운 이야기인데 저희가 모든 노인 문제를 해결할 순 없잖아요. 이 기사를 보시는 분들이 내 어머니, 할머니께 전화 한 통씩만 드리더라도 그들의 하루를 좋은 날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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