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이 될 내년 예산안 편성 지침을 공개했으나, 새 정부 출범 후인 5월 이후 대규모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 정부가 인수위원회와 협의해 확장재정 속도를 줄이겠다는 의향을 밝혔으나, 예산 씀씀이를 줄이는 '지출 구조조정' 등의 규모는 지난 4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의향을 감안해 지침에서 ‘한국판 뉴딜’ 관련 표현도 삭제했으나, 실제 예산에는 그대로 담겨 있는 것으로도 확인됐다.
정부는 29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2023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을 통해 “재정지출 재구조화 등을 통해 재정 역할 수행에 필요한 여력을 확보한다”는 내년 예산편성 방향을 밝혔다.
눈에 띄는 것은 정부가 그간 내세워 왔던 ‘적극적 재정 운용’, ‘한국판 뉴딜’ 등의 표현이 지침에서 빠진 것이다. 정부는 대신 ‘필요한’ 재정 역할을 수행하고, 코로나19로 인한 한시 지출을 ‘정상화’하겠다는 등의 용어를 쓰며 확장재정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사를 에둘러 표현했다. 새 정부의 재정건전성 강화 기조에 발을 맞추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하지만 바뀐 표현과 다르게 실제 예산 편성 방향과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예산 씀씀이를 줄이겠다는 지출 구조조정 규모다. 정부가 내년 지출 구조조정 규모로 예고한 ‘재량지출 10%’(10조 원대)는 지난해 이맘때 정부가 밝힌 수준(재량지출 10%·약 12조 원) 그대로다.
새 정부가 예산 구조조정을 벼르고 있는 '한국판 뉴딜' 관련 예산도 지침에서 빠졌을 뿐이지 △사회안전망 △디지털 △탄소중립 등의 예산에 반영돼 있다.
정부도 내년 예산이 '확장재정' 기조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정부는 이미 올해 예산을 편성하던 지난해 8월 당시 2021~202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통해 ‘2023년 예산은 올해보다 5.0% 늘린 634조7,000억 원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최상대 기재부 예산실장도 25일 브리핑에서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봐도 총수입과 총지출 차이, 총지출과 경상성장률 차이를 고려할 때 ‘다소 확장적’”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내년 예산 편성 지침은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대폭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도 인수위와 협의를 진행했지만,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최 실장은 “편성지침은 새 정부의 예산 편성 방향과도 연계돼 있기 때문에 인수위와도 실무 협의를 했다”며 “인수위의 국정과제가 구체화되면 이를 반영해 5월 초 정도에 추가 보완지침을 각 부처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다만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지난 5년간 이어져온 확장 재정 기조가 단번에 뒤집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올해 1차 추경 기준 예산 규모가 624조3,000억 원인데, 여기다 대규모 추경이 한 차례 더 예고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지출 규모가 재정운용계획상 내년 지출 목표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코로나19 여파가 지속되는 만큼 그동안 늘려 온 재정을 단숨에 줄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재정준칙을 빨리 도입하고, '큰 정부' 기조를 유지하면서 늘린 일자리 예산, 인건비 등을 시작으로 재정 효율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