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첫 여성 외교 수장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23일(현지시간) 지병인 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올브라이트 전 장관의 가족은 이날 성명을 통해 그의 별세 사실을 발표했다고 미 CNN, AP통신 등이 보도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유엔 주재 미국대사를 거쳐 1997년 64대 국무장관에 올라 2001년까지 재임했다. CNN은 “올브라이트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확장을 옹호했고, 대량학살과 인종청소를 막기 위해 발칸반도에 대한 동맹의 개입을 추진했고, 핵무기 확산을 줄이려고 노력했으며, 전 세계 인권과 민주주의를 옹호했다”라고 전했다.
1937년 체코슬로바키아 외교관 딸로 태어난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독일 침공 열흘 만에 현지를 탈출해 유고슬라비아, 영국 등을 거쳐 1948년 미국에 도착했다. 미 콜롬비아대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받고 민주당 에드 머스키 상원의원 보좌관, 지미 카터 행정부 국가안보회의(NSC) 연락관 등을 거쳐 학계에서도 일했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특히 북미관계 개선과 북한 비핵화 협상 과정에도 이름을 남겼다. 그는 2000년 6ㆍ15 남북정상회담 후 남북관계 해빙기 미 외교수장으로 일하며 북미관계 개선을 이끌었다. 같은 해 10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특사로 미국을 방문한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과 북미 적대관계 종식 등의 내용을 담은 ‘북미공동코뮈니케’ 채택을 이끌었다. 이어 같은 달 방북해 미국 장관으로는 처음으로 김 위원장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외교·안보 정책을 진두지휘했던 그는 나토의 확장도 적극 추진했다. 그의 국무장관 재임 시절인 1999년 옛 공산권 국가인 폴란드, 헝가리, 체코가 나토에 가입하면서 이후 2000년대 발트3국과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의 나토 추가 가입의 길을 텄다. 이 같은 '나토의 동진'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불러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는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했다. 그는 지난달 23일 미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2000년대 초 푸틴 대통령과 만난 기억을 상기하며 "당시 푸틴은 소련의 붕괴를 이해하지 못했고, 소련의 위대함을 회복하고 싶어했다“며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시 그의 왜곡된 세계관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다면 역사적 실수가 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는 이웃 나라가 어느 나라인가에 관계 없이 주권이 주어졌고, 현대에 큰 나라들뿐 아니라 푸틴 역시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각국은 주권국가라는 사실) 이것은 최근 서방 외교의 핵심 메시지이며 법치로 다스리는 세계와 법을 무시하는 한 나라의 근본적 차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를 발탁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날 부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함께 성명을 내고 “냉전이 종식되면서 국제 상호의존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자 유엔에서 미국의 목소리가 되었고 이후 국무부에서 자유, 민주주의, 인권을 위해 열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지도자가 됐다”며 "불과 2주 전 마지막 대화를 나눴을 때조차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싸움을 지지했다"고 애도했다.
조지타운대에서 올브라이트 전 장관을 사사(師事)한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그가 이 건물에 미친 영향은 매일 매일, 모든 구석에서 느껴진다"며 "그는 첫번째 여성 국무장관으로서 선구자였고, 말 그대로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