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맞붙은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 측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측의 표 대결에서 조 회장 측이 압승했다. 한진칼의 주요 주주인 사모투자펀드 KCGI 측의 주주제안은 모두 부결됐고, 캐스팅보트를 쥔 한국산업은행은 조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은 23일 서울시 중구 본사에서 제9기 정기주주총회를 열었다. 주총에선 KCGI 산하 그레이스홀딩스가 단독 제안한 △이사자격 강화 △사외이사 후보 추천 △전자투표 도입 등의 안건이 상정됐다. 이날 의결권 있는 주식 총수는 6,726만9,123주, 주주총회 출석 주주는 위임장 제출자를 포함해 총 142명, 주식 수는 5,871만1,936주(의결권 있는 주식 총수의 87.28%)로 집계됐다. 의장은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가 맡았다.
이날 주총에선 우선 그레이스홀딩스의 주주제안 사항은 모두 부결됐다. 그레이스홀딩스는 전자적 방법에 의한 의결권 행사를 위해 정관 일부변경 관련 특별결의 안건과 이사의 자격 관련 안건을 제안했다. 이 주주제안은 배임·횡령죄로 금고 이상 실형의 확정 판결을 받은 인물이 이사가 될 수 없도록 이사 자격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KCGI 측은 기업가치와 주주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란 주장이다.
또 회사 측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추천으로 낸 주인기 연세대 명예교수와 주순식 전 법무법인 율촌 고문의 사외이사 선임건은 각각 찬성 60.6%, 반대 39.4%로 가결됐다. 반면 그레이스홀딩스가 제출한 서윤석 이화여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안건은 찬성 25.02%, 반대 55.63%로 부결됐다.
KCGI가 주주제안에 나선 것은 2020년 주총 이후 2년 만이다. 당시 KCGI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반도건설과 3자 연합을 꾸리고 조 회장 측을 공격했지만 주총 표결에서 완패한 바 있다. 이후 산은이 한진칼 주요지위를 확보하면서 설 자리를 잃게 된 KCGI는 지난해 주총에선 주주제안을 하지 않았고 3자 연합도 사실상 와해됐다. 그럼에도 KCGI가 이번 주총에서 주주제안에 나선 배경에 대해 업계에선 "KCGI가 조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을 견제하는 한편 이번 주총을 계기로 투자금 회수에 들어가기 위한 수순이 아니겠냐"는 시각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의결권 기준 한진칼의 주요주주 지분율을 살펴보면 조원태 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20.79%, 델타항공이 13.10%를 보유 중이다. 이어 그레이스홀딩스 등이 17.27%, 대호개발 등이 16.89%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산업은행의 한진칼 지분율은 10.50%다.
조 회장은 석 대표이사가 대독한 주주총회 인사말에서 "한진칼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그룹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주주가치를 높이기 위해 올해 경영방침을 '그룹의 코로나19 위기 극복 지원 및 유동성 확보'로 정했다"면서 "올해를 글로벌 메가 캐리어(초대형 항공사)로 나아가는 원년으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또 "위드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선제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하고 수익성 중심의 그룹 사업구조 개편을 추진해 북활실한 경영 환경 속에서도 기회를 창출하고 재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