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2021년 플랫폼 종사자 규모와 근무실태 결과’에 따르면,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일거리를 얻고 노무를 제공하는 플랫폼 노동 종사자는 220만 명이다. 전체 취업자(16~69세)의 8.5%에 달하는 숫자다. 퀵서비스, 택배 배송, 배달 라이더, 대리운전부터 가사 청소, 가사 돌봄, 웹툰 작가까지 스마트폰과 앱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등장하지 않았을 이 노동은 어느새 오늘날 가장 흔한 노동 형태 중 하나가 됐다.
이서수 작가의 장편소설 ‘헬프 미 시스터’의 주인공 가족 역시 모두 이 플랫폼 노동 종사자다. 소설은 한 가족의 플랫폼 노동 도전기를 통해 플랫폼 산업과 열악한 노동 현실, 평범한 소시민의 살아가는 모습을 담담히 그린다.
주인공은 수경과 우재 부부, 수경의 부모인 천식과 여숙 부부에 조카인 지후와 준후다. 낡은 15평 빌라에 모여 사는 네 명의 어른과 한 명의 청소년은 모두 플랫폼 노동을 한다.
이들이 처음부터 플랫폼 노동에 종사했던 것은 아니다. 여숙은 젊은 시절부터 장사와 청소 노동, 식당 종업원 등 안 거친 일이 없다. 천식 역시 염색 공장, 가구점, 자동차 판매상, 식자재 납품 회사 운영 등 갖가지 일을 하며 돈을 모았지만 사기를 당해 전부 날리고 만다. 우재는 다니던 중소기업을 그만두고 해외선물거래를 하는 전업투자자가 된 지 4년째지만 사실상 수익이 없는 백수다.
그나마 성실함과 능력을 갖춘 수경이 회사를 다니며 집안의 가장으로 모두를 먹여 살렸지만, 회사 동료로부터 약물 성범죄를 당할 뻔하면서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나이가 들어서, 경력이 단절돼서, 회사로 돌아가는 것이 두려워서, 이들 가족은 저마다의 이유로 뚜벅이 음식 배달과 자차 배송, 대리 운전과 여성 전용 심부름 대행이라는 플랫폼 노동에 뛰어들게 된다.
어른들만 플랫폼 노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재의 조카인 열일곱 살 준후는 온라인 게임 도박의 ‘총판’으로 활동하면서 수수료를 받아 챙긴다. 준후의 여자친구인 열다섯 살 은지는 청소년 채팅 사이트인 ‘틴챗’에서 성인 남성들과 대화를 하거나 이들에게 사진을 보내주며 돈을 번다.
한 명이 아닌 한 가족 전체를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그들이 처한 저마다의 상황을 더한 모습이 정확히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기 때문이다. 마치 40년 전 난장이 가족이 그러했듯, 수경의 가족 구성원 모두는 평생 성실하게 노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삶이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꼬여가는 것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자리에 서 있었을 뿐인데 자꾸만 어디로 밀려나게 되는 이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별로 없고, 플랫폼 노동은 그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가장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특히 남성 동료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입고 일을 그만둬야 했던 수경에게, 의뢰인도 구직자도 모두 여성인 여성 전용 심부름 앱 ‘헬프 미 시스터’는 안성맞춤인 일이다.
소설은 이들을 손쉽게 연민하는 대신 노동자로서의 자기 긍지를 되찾아주는 길을 택한다. 물론 플랫폼 노동은 산재 처리가 안 되고, 고정된 일감이 없기에 고정된 급여도 없으며, 사실상 0시간 계약이나 다름없는 데다 장시간 대기 상태로 있어야 하는,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늘 타인의 평점에 전전긍긍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 스트레스 역시 심하다.
그러나 동시에, 플랫폼 노동은 “스스로 일어서는 것. 상처를 지닌 채로 걸어가는 것. 다시 사회에 뛰어들어 생계와 보람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와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이라는 꿈을 다시 꿀 수 있게 해준다. 평생 용역회사나 인력사무소만 들락거리며 살 줄 알았던 여숙은 플랫폼 노동에 뛰어들면서 운전도 배우고 앱도 다루게 된다. 이들에게 플랫폼 노동은 고단한 돈벌이 수단이지만 또한 새로운 가능성이자 삶을 앞으로 밀고 나가는 동력이기도 하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 수경 가족은 반지하이긴 하지만 좀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자고 약속한다. 노동의 구체적인 모습은 변할지라도 노동의 가치만은 변하지 않으니까. 수경의 가족은 그렇게 노동자로서 계속 살아갈 것이다.
“그들 모두 이렇게 한마음으로 함께 있다는 것이 기적. 그들 모두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해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 기적. 그들 모두 웃고 있다는 것이 기적. 기적이라고 생각하면 정말로 모든 게 기적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