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난다. '내수용 기업'이란 오명을 쓴 카카오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직접 진두지휘하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지난해부터 내수시장에서 잇따라 불거진 각종 논란 탓에 김 의장은 앞으로 해외 사업에만 집중, 정치권을 비롯한 국내시장 환경과 거리두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 의장은 14일 카카오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에 보낸 메시지에서 "미래 10년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를 '비욘드 코리아, 비욘드 모바일(Beyond Korea, Beyond Mobile)'로 말씀드린 바 있다"면서 "앞으로 엔케이(남궁훈 카카오 대표 내정자)가 '비욘드 모바일'을 위해 메타버스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작업을 주도하고, 저는 카카오 이사회 의장에서 내려와 '비욘드 코리아'를 위한 카카오 공동체의 글로벌 확장으로 업무의 중심을 이동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음카카오(현 카카오)의 초대 의장을 맡았던 그가 의장직에서 내려온 건 2014년 이후 8년 만이다. 김 의장은 그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카카오의 미래 전략을 세우는 데 집중해왔다. 하지만 카카오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판단에 따라 다시 경영 전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의장직을 내려놓지만, 카카오 미래이니셔티브 센터장 역할은 유지할 예정이다.
김 의장은 우선 일본을 중심으로 카카오의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데 집중할 방침이다. 주요 거점은 카카오의 해외 사업 중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일본의 인터넷만화(웹툰) 플랫폼 '카카오픽코마'다. 일본 웹툰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 중인 카카오픽코마의 지난해 거래 규모는 전년 대비 74% 증가한 7,227억 원에 달하면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실제 카카오 주요 자회사 중 김 의장이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린 건 카카오픽코마가 유일할 만큼, 상당한 공을 들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장은 2000년 한게임 재팬을 설립하는 등 풍부한 일본 시장 경험을 바탕으로 2017년 카카오픽코마 사내이사를 맡아 한국과 일본 현지를 오가며 사업에 참여해 왔다. 김 의장은 카카오픽코마를 중심으로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카카오게임즈 등 지식재산권(IP) 중심의 콘텐츠 사업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일각에선 김 의장의 사임을 놓고 각종 논란을 회피하기 위한 도피성 '꼼수'로 보인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제기된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골목상권 침해 논란으로 카카오가 정치권의 집중 표적이 됐고, 이후에도 계열사 쪼개기 상장, 카카오페이 경영진의 스톡옵션 먹튀 논란 등으로 여론이 급격하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이사회에서 물러난 김 의장은 각종 법적 책임에서도 자유로워진다. 김 의장의 사임으로 공석이 된 카카오 사내이사에는 홍은택 카카오 얼라인먼트센터장이 내정됐다. 카카오 이사회 개편은 이달 29일 주주총회를 통해 확정된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의장직 사임은 사실상 '자의 반, 타의 반'"이라며 "김 의장이 카카오의 미래 성장동력인 콘텐츠 플랫폼 사업을 진두지휘하면서, 골치 아픈 국내시장에선 손을 떼겠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