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몸체라면 돈은 그 영혼이다.
터키 출신 예술가 파렌틴 오렌리(53)는 세계 자본의 흐름을 쫓아 '도시의 유전자'를 밝히는 작업을 한다. 20세 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그는 베이징, 뉴욕, 도쿄 등지를 떠돈 자칭 '아나티스트(무정부주의자와 예술가를 합친 말)'다. 주로 암스테르담, 이스탄불,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최근 개인전 '도시 유전자→버블 인 더 마인드'를 열고 있는 서울 마포구 대안공간 루프에서 만난 작가는 "인간이 만든 게 도시지만 도시 자체도 유기적으로 변해가고, 그 도시가 다시 인간과 다른 도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연구한다"고 했다. 그의 눈에 비친 도시는 유기적 생명체다.
이번에 선보인 신작 '도시의 유전자'는 런던에서 출발한 정자가 서울에 당도하기까지 여정을 담은 8분 46초 분량의 영상이다. 런던의 금융가 밀집 지역인 옛 도심 '시티 오브 런던'을 출발한 정자는 암스테르담을 거쳐 서울에 도착해 산산조각이 나 터져 나간다. 자본주의의 본령, 런던을 시작점으로 잡았다. 대영제국의 영화를 뒤로 산업혁명 등 근대화 과정을 주도하면서 자본주의 시스템을 전 세계에 퍼뜨린 게 영국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암스테르담으로 흘러들어간 자본의 이동 역시 그대로 보여준다. 정자는 자본의 흐름이면서 동시에 그 이면에 도사린 가부장제에 대한 메타포인 셈이다. 식민주의와 가부장제의 공조라는 그의 오랜 화두가 잘 담겨 있다.
그의 작품 속 도시들은 다른 도시에 경제적 영향을 주는 거대 도시란 점에서 닮았다. 2004년부터 서울을 자주 찾은 작가는 "처음에는 1년마다 크게 바뀌더니 그 다음에는 6개월마다, 이젠 3개월마다 달라지는 굉장히 빠르게 변하는 곳"이라고 서울에 대한 인상을 밝혔다. 서울은 이스탄불과 여러모로 닮았다고 한다. 반면 암스테르담, 뉴욕과는 대척점에 있다. "개인주의적인 암스테르담, 뉴욕과 달리 사람들이 모이기 좋아하고, 무언가 함께 만들어내는 사회적 도시"란 점에서다. 그는 "옛 가치를 절대 버리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가치를 더해 또 다른 가치를 만들어가는 게 암스테르담과 뉴욕이라면 서울은 모든 역사적 잔재를 다 없애고 완전히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내는 도시"라고 덧붙였다.
'도시의 유전자' 안 서울 풍경은 작가가 합정동에서 찍은 것이다. 당인리발전소의 굴뚝이 내뿜는 시커먼 연기와 높은 빌딩의 스카이 라인 위로 정자가 부유한다. 작가는 "아직도 화석연료를 태워 연기를 내는 도시는 전 세계에서 흔치 않다"며 "서울의 그런 장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전시는 다음달 24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