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공직선거에 비대면 전자투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감염병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는 데다, 코로나19 확진자를 대상으로 한 사전투표 관리 미흡 논란까지 겹치면서 '현장 방문·종이 투표' 체제로는 더 이상 공직선거를 원활히 치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비대면 전자투표 시스템을 무작정 도입했다가는 선거의 4대 원칙이 훼손될 수 있어 안전성부터 입증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9일 마무리된 대선 이후 일부 유권자들과 학계에선 향후 비대면 전자투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현행 선거는 ①투표소를 방문해서 ②투표지에 기표한 뒤 ③기계로 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감염병이 2~5년 주기로 반복될 수 있어, 투표 방식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재희 공주대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서 "코로나19가 극복된다 해도 신종 감염병 확산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며 "선거권의 실질적 행사가 보장되고 공정성이 훼손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전자투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직접 민주주의 확산과 비용 절감 또한 전자투표의 장점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비대면 전자투표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블록체인과 생체인식 기술을 적용한 전자투표 프로그램 연구가 조금씩 진전되고 있지만, 익명성이 완벽하게 보장되지 않아 비밀투표 원칙이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킹 등 안전성 우려 또한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향후 보안 문제가 해결된 비대면 전자투표 프로그램이 나오더라도 곧바로 적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예컨대 노인들은 전자투표에 익숙지 않아 참정권 행사에 제약을 받을 수 있어 "나이·재산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투표할 수 있다"는 보통선거 원칙이 지켜지기 어렵다. 투표를 돕기 위해 보조원을 붙이면 대리 선거 논란으로 번질 수도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해외에선 인구가 130만여 명에 불과한 에스토니아에서만 비대면 전자투표를 적용하고 있다.
비대면 전자투표 시스템을 채택하려면 기술을 고도화해 안전성부터 입증해야 한다. 섣불리 전자투표를 적용했다가 허점이 발견되면 제도 폐지는 물론이고, 관련 논의 자체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도 1990년대 공직선거에 전자투표기기를 도입했다가 2007년 종이투표로 돌아왔다. 컴퓨터 전문가들로 구성된 시민단체가 2006년 방송에 출연해 선거에 사용된 전자투표기기를 5분 만에 해킹했기 때문이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비대면 전자투표 시스템 도입에 신중한 입장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공직선거 전자투표 도입은 국민적·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신중한 검토를 거쳐 입법, 정책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