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을 알리는 상징인가.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널드가 진출 32년 만에 러시아에서 마지막일 수도 있는 영업을 마쳤다. 1970년대부터 구(舊)소련에 진출해 영업망을 넓혔던 펩시콜라와 세계 최대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도 러시아에서 철수한다. 이른바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 특권 계층)’의 부를 드러냈던 사치품 업체들도 속속 러시아를 떠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주일 만이다.
크리스 켐프친스키 맥도널드 최고경영자(CEO)는 8일(현지시간) 직원들과 가맹점주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러시아 내 850개 점포에서 영업을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며 “맥도널드는 상황을 계속 평가해 추가 조치가 필요한지를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러시아 내 종업원 6만2,000명에게는 계속 급여를 지급하기로 했다. 맥도널드가 2014년 동부 우크라이나(돈바스) 사태 때 서방의 경제 제재에 대한 러시아의 보복으로 일부 매장을 폐쇄했을 때와 유사한 방침이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매장 100여 곳을 모두 잠정 폐쇄하는 대신 직원들에게 급여를 계속 지급하고, 500만 달러를 종업원 원조기금으로 기부할 방침이다.
맥도널드 영업 중단 소식에 러시아인들은 오전 10시 가게 문이 열리기 전부터 마지막 '빅맥'을 먹기 위해 500m가 넘는 줄을 선 모습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퍼졌다. 드라이브스루 매장 앞 도로에도 800m쯤 되는 차량 대기 행렬이 포착되는가 하면, 시민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경찰 병력이 배치되기도 했다.
모스크바 맥도널드 매장은 탈(脫)이데올로기 시대의 상징 격이어서 폐점의 충격이 크다. 맥도널드는 구소련 붕괴(1991년 12월 26일) 1년여 전인 1990년 1월 30일 모스크바 중심 푸시킨광장에 첫 러시아(당시 소련) 매장 문을 열었다. 미국과 자본주의의 표상인 맥도널드가 모스크바에 입성한 것은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을 단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개점 첫날에만 시민 3만여 명이 매장을 찾는 진풍경을 보여 세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역사와 의미, 추억이 담긴 매장이 철수하는 것은 러시아와 미국 간 관계 악화를 단적으로 드러낸다는 지적이다.
세계 최대 커피 체인인 스타벅스도 러시아에서 모든 영업활동을 중단한다고 이날 밝혔다. 케빈 존슨 스타벅스 CEO는 성명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이유 없고 부당하며 끔찍한 공격을 규탄한다”며 러시아 사업에 대한 로열티를 우크라이나의 구호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스타벅스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130여 개 매장을 운영 중이지만, 이 중 직영 매장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내 매장은 쿠웨이트 자본이 운영 중이다. 코카콜라도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 여파로 고생하는 모든 사람에게 위로를 보낸다”며 “러시아 내 영업을 중단한다”고 밝혔고, 미 식음료 회사 펩시코는 펩시콜라, 7up, 미란다 등 탄산음료 브랜드에 대한 러시아 영업을 중단하기로 했다. 다만 유아식, 우유, 기타 유제품 등 필수 제품은 계속 러시아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이탈리아 고급 스포츠카 회사인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는 러시아에 더는 자동차를 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페라리는 성명에서 “현재 상황을 고려해 추후 발표가 있을 때까지 러시아 시장을 위한 차량 생산을 중단한다”며 “우리는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면서, 제재와 규칙을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람보르기니는 “전쟁의 신속한 종식과 외교 복귀를 희망한다”며 러시아 사업 중단을 발표했다.
스위스 최대 시계 브랜드인 롤렉스도 스와치그룹, 몽블랑과 카르티에를 소유한 리치몬드그룹과 함께 러시아 수출 중단을 결정했으며 루이비통, 디올, 셀린느 등 브랜드를 보유한 루이비통모엣헤네시(LVMH)는 “이 지역 최근 상황을 고려해 다음 날부터 러시아 매장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대 우군’인 올리가르히를 대상으로 한 ‘표적 제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