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와 제2 도시 하르키우 등 주요 도시에 러시아군의 전면적인 공격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이 지역들의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주의 통로를 개방하겠다고 밝혔는데, 통로는 러시아 혹은 벨라루스로만 연결돼 있다. 인질이 되거나 아니면 폭격을 받으라는 '선전포고'나 다름 없는 셈이다.
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러시아 국방부가 모스크바 시간으로 이날 오전 10시부터 키이우, 하르키우, 수미 등의 도시에서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주의 통로를 열기로 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개인적 요청에 따라 민간인 탈출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탈출 경로를 보면, 말만 인도주의 통로일 뿐이다. 통로의 최종 목적지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날 러시아 국영 RIA통신에 따르면 키이우 시민은 러시아나 벨라루스로 이동해야 하며, 하르키우 민간인은 러시아로만 대피할 수 있다. 동부 마리우폴이나 수미 지역 민간인들은 이미 러시아가 주요 도로를 장악한 것으로 보이는 자포리자나 혹은 러시아로만 이동할 수 있다. ‘길을 열어 주긴 할 텐데 가려면 러시아나 벨라루스로 넘어오라’는 얘기다. 우크라이나 북쪽 접경국인 벨라루스는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전진기지 역할을 한 곳 중 하나이고 러시아군과 함께 군을 파병한 것으로 알려진 국가다.
결국 러시아가 허용하겠다는 인도주의 통로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겐 ‘살고 싶다면 침략한 러시아로 넘어와 스스로 인질이 돼라’는 의미로 읽힐 수밖에 없다. 이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인도주의적 통로 종착지가 러시아이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피란길에 나설진 불확실하다"고 전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대피할 권리가 있다"며 "러시아가 언급한 인도주의적 통로는 완전히 비도덕적"이라고 비판했다. 제임스 클레벌리 영국 유럽담당 장관은 이날 BBC방송에서 "침략자의 나라로 대피하라는 것은 완전한 넌센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요 도시에 대한 러시아군의 초토화 작전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번 인도주의 통로가 ‘나오지 않으면 공격한다’는 의미도 내포됐다는 얘기다. 러시아로서는 ‘인도주의 통로’를 열었다는 점을 근거로 민간인 대량 살상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을 맞받아칠 수 있는 핑계를 만든 만큼, 부담을 한층 덜어낸 상태에서 총공세에 나설 수 있을 전망이다. 실제로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은 이날 텔레그렘을 통해 “인도주의 통로에서 언급되지 않은 부차, 호스토멜, 이르핀 지역에선 격렬한 교전이 계속되고 있다“며 “민간인 피해 역시 발생하고 있다“고 성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