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경북 울진군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번져, 화재 현장 인근 한울원자력발전소와 액화천연가스(LNG) 기지를 위협하고 있다. 다만 소방당국이 원전과 LNG 기지 인근 화재를 필사적으로 진압하고 있어 현재까지 관련 시설은 화재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산불이 확산하면서 정부는 이날 오후 9시를 기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가동하고, 오후 10시부로 강원·경북에 재난 사태를 선포했다.
중대본 등에 따르면 화재는 울진군 북면 야산에서 오전 11시 17분쯤 시작됐다.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은 바람을 타고 7번 국도를 넘어 동쪽 바닷가 쪽으로 번졌고, 급기야 동해안 쪽 북면 부구리 일대로 확산됐다. 부구리에는 한울원전 6기와 신한울 원전 2기 등 총 8기의 원전이 있다.
이날 오후 8시 30분 현재 주택 22채, 창고 5곳, 비닐하우스 4개가 불에 탔고 주민 등 3,950명이 인근 마을회관과 학교 등으로 대피했다. 산불로 인해 북면 한국수력원자력 사택에 마련된 사전투표소 업무가 오후 1시 30분부터 중단됐다.
최초 발화지점은 원전에서 10㎞ 이상 떨어진 곳이었지만, 화재 확산 속도가 워낙 빨라 일부 불씨가 원전 주변 시설로까지 번지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청은 원전 인근에 '대용량포 방사시스템'을 배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산불 확산 속도가 줄어들지 않아 소방당국은 이날 밤에도 진화를 멈추지 않고 야간 방재 활동을 벌일 계획이다. 산불로 원전 인근 마을은 정전된 상태다.
화재 현장 인근에는 강한 남서풍이 불고 있어 화재가 북동쪽으로 번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화재가 도 경계를 넘어 강원 삼척시 쪽으로 번지자, 소방당국은 삼척시 LNG 기지 주변에 다수의 소방차를 투입해 대비했다.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 등 주민 1,000여명이 대피했고, 동해안 주요 도시를 잇는 국도 7호선 구간도 일부 폐쇄됐다. 삼척시는 LNG 기지 바로 아래에 있는 가곡천을 최종 방어선으로 설정하고, 시청 소속 공무원 동원령을 내려 화재 확산에 대비했다.
산림당국은 이번 산불 영향 구역이 울진 3,240㏊, 삼척, 60㏊ 등 3,300㏊로, 최근 10년 간 최대 피해 규모라고 밝혔다. 산불은 삼척으로 계속 확산하고 있어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소방청은 전국 소방동원령을 발령하고 소방차 총 105대를 배치했다. 특히 한울 원전에는 고성능 화학차 등 소방차 24대를 집중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소방청은 유류 저장탱크 등에서 발생하는 대형 화재를 진압하는 대용량 방사포 시스템을 원전 인근에 배치한 상태다. 대용량 방사포는 지름 30㎝의 원형 배관에 강한 압력을 가해 분당 최대 7만5000ℓ의 물을 110m 떨어진 곳까지 뿌릴 수 있다. 위력은 소방장비로 소방차 26대와 맞먹는다.
앞서 오후 1시50분 1차 동원령 때 대구 울산 경기 충북 경남 등의 소방차 35대가 투입된데 이어, 오후 3시 2차 동원령 때는 서울 부산 대전 경기 충남 강원 등지에서 산불전문진화차량 등 42대가 추가 배치됐다.
산림청도 오후 2시 10분쯤 산불 3단계와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 심각을 발령하고 산림 헬기 28대와 산불진화대 417명을 투입해 진화작업을 벌였다. 산불 3단계는 예산 피해 면적이 100㏊ 이상, 평균 풍속 초속 10m 이상일 때 발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