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체의 상호 진출을 허용한 '업역규제 폐지 정책'이 단계적 시행 1년여 만에 전문건설업계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당초 의도와는 달리 몸집이 큰 종합업체가 소액의 전문공사까지 휩쓸면서 영세한 전문업체는 설 자리가 좁아졌다는 것이다. 올해는 개방 범위가 민간공사까지 확대돼 부작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건설산업 생산구조 혁신 로드맵'을 통해 지난해 공공공사를 시작으로 종합·전문건설업 간 상호 시장 진출을 허용했다. 여러 공종이 포함된 종합공사는 종합건설업자만, 단일 공종의 전문공사는 전문건설업자만 시공할 수 있게 했던 기존의 업역규제를 없앤 것이다. '칸막이 규제'가 경쟁을 저해하고 다단계 도급 구조를 고착화한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다수의 전문업체가 종합공사에 진출할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칸막이가 사라진 탓에 과거 일감이었던 소규모 공사마저 종합업체의 차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전문건설협회의 '2021년 상호 시장 허용 공공수주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종합업체가 수주한 전문공사는 전체 1만3건 중 3,081건(30.8%)에 달하지만 전문업체가 수주한 종합공사는 8,660건 중 646건(7.5%)에 그쳤다. 손해 규모는 7,000억 원 상당이라는 게 협회 추산이다.
박승국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산업혁신연구실장은 "전문업체가 종합공사를 수주하려면 여러 개의 전문면허를 보유해야 하지만 종합업체는 하나의 종합면허만으로도 거의 모든 전문공사 진출이 가능하다"며 "2개 이하의 면허를 보유한 전문업체 비중이 89.8%에 달하는 실태를 감안하면 종합공사 진출이 가능한 전문업체는 사실상 소수에 불과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도 이 같은 부작용을 해소하고자 올해 공공공사 부문부터 29개로 세분화된 전문업종을 14개로 통폐합해 발주하기로 했지만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1개의 전문 면허만으로도 종합공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전문업체들 간 컨소시엄 구성도 허용할 예정이지만 적용 시점이 2024년이라 그 전의 실적 감소는 불가피하다는 불만도 나온다.
전문업계 관계자는 "종합공사 입찰은 많게는 10개 이상의 등록업종을 요구하는데 업종 개편을 절반 수준으로 단순화한다고 해서 1, 2개 면허를 가지고 있는 전문업체들의 부담이 해소되지는 않는다"라며 "현재와 같은 종합업계 잠식 상황이 지속되면 영세업체의 생계는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시공 능력이 부족한 종합건설업체가 전문공사를 무리하게 수주하면서 불법하도급을 양산하는 문제도 있다. 정부는 상호시장 진출을 허용하면서 도급 금액의 80% 이상을 직접 시공하도록 규정했는데, 그간 종합업체는 입찰 등에 치중하고 실제 시공은 하도급 업체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국토부가 종합건설사의 전문공사 현장을 점검한 결과, 조사 대상의 34%에서 불법 하도급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전문업체들의 반발에 국토부는 각 협회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지속적인 논의를 이어간다는 입장이지만 당장의 제도 개선에는 난색을 표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종합·전문업계와 만나 로드맵의 영향과 부작용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면서도 "제도 시행 초기라 당장 추가 개정에 나서기 보다는 진척 상황을 지켜보는 단계"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