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년 전엔 구입이 어렵지 않았는데…" 직장인 권모(34)씨는 지난해 12월 오전 10시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샤넬 매장을 찾았다가 혀를 내둘렀다. 대기번호 150번을 받아 들고 3시간을 기다려 매장에 들어갔지만 원하는 제품이 없어 빈손으로 돌아나왔다. 권씨는 "가격 인상 소식에 미리 구매하고 싶었는데 헛걸음했다"며 허무해했다.
#. 최근 ‘오픈런’ 세 번 만에 샤넬에서 예단백을 구입한 홍모(32)씨도 5시간 30분을 기다린 끝에 겨우 가방을 손에 넣었다. 홍씨는 "오픈런 세 번이면 빨리 구한 것"이라면서도 "아침부터 줄 서서 초조해하는 내 자신이 처량했다"고 말했다.
명품 가격이 시도 때도 없이 오르면서 명품백 구하기 쟁탈전이 심화하고 있다. 가격이 오르기 전에 조금이라도 싸게 구입하려는 수요가 몰리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 사이에선 "갑질당하면서 산다" "호구 한국"이라는 볼멘소리도 터져 나온다.
최근 2년 사이 명품 브랜드의 가격 인상 주기는 급격히 짧아졌다. 지난해에만 프라다는 여섯 번, 루이비통은 다섯 번, 샤넬은 네 번 가격을 올렸다. 올해 들어서도 에르메스, 샤넬, 디올, 루이비통, 구찌 등이 가격을 인상했다. 수천만 원대의 에르메스 외에 샤넬과 루이비통이 주요 제품 가격을 15~20% 올리면서 '명품백 1,000만 원' 시대가 됐다.
명품 브랜드들은 가격 인상의 이유로 본사의 글로벌 가격 정책, 환율 변동 반영, 원·부자재 가격 상승, 최저 임금 및 인건비 상승 등을 내세운다. 하지만 유통업계에서는 보복소비로 늘어난 명품 수요를 주된 요인으로 본다. 명품은 과시성이나 자기만족감을 얻기 위해 구매하는데 명품 대중화로 희소성이 떨어져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가격을 올린다는 것이다. 지난해 백화점 3사(롯데·신세계·현대)의 명품 매출은 각각 32.8%, 44.9%, 38% 증가했다. 특히 2030세대 고객 비중이 40~50%로 상승한 것은 대중화의 한 단면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명품은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소수의 전략이 병행돼야 하는데, 사는 사람이 늘어나니 열망의 도구로서 가치가 떨어진다"며 "사기 어렵도록 위기감을 조장하면서 가격 결정권을 가져가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명품 브랜드들은 이외에도 여러 구매장벽을 쌓아 콧대를 높이고 있다. 일례로 샤넬은 지난해 10월부터 일부 제품은 연간 1인 1개로 구매수량을 제한했다. 에르메스는 일부 제품에 대해 일정 금액 이상의 구매 이력을 조건으로 건다.
100만~200만 원대 수익성이 떨어지는 제품군은 입고를 중단하고 고가 제품군 위주로 판매를 강화하거나, 의도적으로 공급물량을 조절하기도 한다. 루이비통 등은 면세사업을 축소하고 백화점 입점도 중단했다. 결과적으로 구매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
유통업계는 코로나19가 진정된 후 해외여행이 풀리면 수요가 분산되면서 명품 가격 인상 속도도 둔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한 번 올라간 가격이 내려가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브랜드 가치가 훼손될뿐더러 이미 구매한 고객의 항의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명품백이 흔해지면서 구매가 줄기보다는 다른 품목으로 명품 소비가 확장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좀 더 구매력 있는 소비자들은 이제 가방이 아닌 의류, 가구, 구두 등으로 만족감을 얻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품목은 이미 현실화됐다. 롯데멤버스가 지난해 거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명품 여성화 구입 증가율은 2018년 대비 50대(190.9%), 20대(174.7%), 60대(151.1%) 순으로 높았다. 명품백 구입 증가율을 큰 폭으로 앞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