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조건부 합병 승인으로 ‘초대형 항공사’ 탄생에 가속도가 붙게 됐다. 하지만 국내 항공업계에 돌아올 파장은 미미할 것이란 전망이다. 양사가 장악해온 김포발(發) 일본·중국 노선이 슬롯(시간당 가능한 비행기 이착륙 횟수)·운수권(정부가 항공사에 배분한 운항 권리) 회수 대상에서 제외, 중·단거리 노선에서 통합 항공사의 경쟁력이 국내 LCC를 압도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22일 두 항공사의 합병으로 운임 인상 등의 경쟁제한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한 국제선 26개, 국내선 14개 노선의 슬롯·운수권을 이전하도록 하고 운임 인상을 제한하는 내용의 시정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은 서울~뉴욕·로스앤젤레스 등의 항공 자유화 노선에서 공항 슬롯을, 서울~런던·파리 등 항공 비(非)자유화 노선에서 슬롯과 운수권을 신규 진입 항공사에 이전해야 한다. 그동안 서울~런던·파리 등의 유럽 노선 등은 양사가 운수권을 독점하고 있어 저비용항공사(LCC)의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공정위가 부과한 시정조치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의 주식취득을 완료하는 '기업결합일'을 기점으로 10년간 이행해야 한다. 조치 대상인 26개 국제노선 중 운수권이 필요한 총 11개 노선은 유럽의 프랑크푸르트와 런던, 파리, 로마, 이스탄불, 중국의 장자제, 시안, 선전, 베이징(부산), 호주 시드니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등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11개 노선에 대한 운수권을 반납하면 국토교통부는 다른 항공사로부터 운수권 배분 신청을 받아 적정성 등을 평가해 배분하게 된다.
업계에선 LCC 중 티웨이항공과 중대형 항공기를 도입한 하이브리드 항공사 에어프레미아가 통합 항공사의 장거리 노선을 염두에 두고 취항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내 항공산업의 재편까지 기대했던 LCC 업계 내부엔 어두운 표정이 역력하다. 당초 양사의 합병 이후 김포발 도쿄, 상하이, 울란바토르 등 단거리 노선의 선점을 기대했던 LCC 업계의 바람과 달리 공정위가 시정 명령을 부과한 노선에 이들 단거리 노선이 빠졌기 때문이다. 해당 노선들은 중·대형기를 도입해야 취항이 가능한 서유럽이나 일부 미주 노선 대신, 현재 운항 중인 기종을 활용할 수 있고 수요도 높아 '알짜노선'으로 꼽힌다. 국내 LCC 업계 관계자는 "비즈니스석 수요가 높은 단거리 노선이 제외됐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만 운수권을 독점하고 있는 몽골 노선도 운수권 조정 대상에서 제외됐다"며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운수권·슬롯 회수 조치는 신규 진입 항공사가 있을 때만 할 수 있다. 국내 LCC가 향후 10년간 장거리 노선에 미취항하고 경쟁 항공사에서 특정 노선에 취항하지 않는다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슬롯 및 운수권은 유지된다. 결국 ‘알짜 단거리 노선’에서 통합 항공사의 독과점이 심화될 가능성도 높은 셈이다.
이와 함께 운수권 이전에 시일이 필요한 국제선과 달리, 당장이라도 조정 가능한 국내선조차 10년 내 조정하도록 한 점도 소비자의 편익 증대를 늦추는 요인으로 지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