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제31회 하이원 서울가요대상'에서 K-POP 가수들이 정체불명의 제품을 마시는 모습이 포착됐다. 종이팩에 담겨 주스나 우유로 보였지만 사실은 생수였다. 가수들이 종이팩 생수를 마시는 모습이 유튜브를 통해 확산하면서 해당 제품은 K-POP 팬들에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이 제품은 아이쿱생협 자연드림이 지난해 6월 출시한 종이팩에 담긴 생수 '기픈물'이다. 기픈물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자는 취지의 'NO 플라스틱 약속' 캠페인에 30만8,000여 명이 참여하는 등 '가치소비'를 즐긴다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생수를 담을 수 있는 멸균 종이팩을 만든 곳은 스웨덴 식품 패키징 기업 테트라팩이다. 1983년 한국에 설립된 테트라팩코리아는 지난해에만 기픈물 멸균팩을 7,600만 개 공급했다.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테트라팩코리아 본사에서 만난 오재항 부사장은 "멸균팩은 효율적인 재활용이 가능해 자원순환 체계만 제대로 구축한다면 탄소 감축에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생수는 마그네슘, 칼슘 등 영양 성분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이취(이상한 냄새)를 차단하는 것이 어려워 주로 플라스틱 병에 담았다. 테트라팩은 재빠르게 높은 열을 가했다가 급히 냉각시켜 완전한 무균 상태로 만드는 자체 아셉틱(Aseptic) 기술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기픈물의 뚜껑에는 사탕수수가 원료인 폴리에틸렌 소재를 사용했고 몸통에는 분해 과정을 감안해 국제산림관리협의회(FSC) 인증을 받은 재생 가능 종이를 적용했다.
판매한 지 1년이 채 안 됐지만 탄소 저감 효과가 가시화되고 있다. 자연드림에 따르면 최근 8개월간 수거된 기픈물 멸균팩은 약 131톤이다. 30년생 소나무 1,572그루를 보호하고 이산화탄소 10.3톤을 감축한 효과를 본 셈이다.
오 부사장은 멸균팩에 대해 "제품 제조 전 과정의 환경영향을 측정하는 환경전과정평가(LCA)에 따르면 포장재 중 종이팩의 탄소 배출량이 현저히 적다"며 "재활용만 잘하면 어느 소재보다 친환경적인 포장재가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다만 분리배출률을 높이는 건 그에게도 고민거리다. 재질·구조가 다른 살균팩과 멸균팩은 따로 배출해야 하고 멸균팩의 경우 뚜껑을 분리해 버려야 효율적인 재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테트라팩코리아는 한국멸균팩재활용협회를 창립하고 2030년까지 멸균팩 재활용률 70% 달성을 목표로 재활용 기술을 개발 중이다. 협회 회장이기도 한 오 부사장은 "멸균팩 생산부터 회수 뒤 자원으로 재생산되기까지 전 과정을 망라한 종이팩 재활용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했다.
지난해 국내에 멸균팩 약 23억 개를 공급한 테트라팩코리아는 올해 생수 멸균팩 공급량을 늘릴 방침이다. 탄소세를 절감하려는 기업과 호텔들의 요청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멸균팩은 신선하지 않다"는 오해가 있었으나 성분은 지키면서 장기보관이 가능하다는 강점이 알려졌고 코로나19를 계기로 사용량이 늘어 앞으로 수요는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멸균팩의 활용도를 높이는 작업도 이어간다. 음료, 생수에서 더 나아가 옥수수, 햄, 참치 등 통조림 식품들을 종이팩에 담기 위해 연구하고 있다. 오 부사장은 "유럽권에서는 이미 종이팩에 담긴 식품이 상용화됐다"며 "2, 3년 안에 우리나라에서도 출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