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원(21)과 이승훈(34) 김보름(29) 등 대한민국 빙속 선수단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평창 악몽’을 털어내는 시원한 질주를 선보이며 아름다운 빙상 드라마를 완성했다.
정재원은 19일 중국 베이징의 국립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빙속 남자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함께 결승에 진출한 이승훈도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금메달은 바르트 스빙스(벨기에ㆍ7분47초20)가 가져갔는데, 정재원과 불과 0.07초, 이승훈과는 0.09초 차였다.
4년 전 2018 평창올림픽에서 조연이었던 정재원은 이번 대회에서 주연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정재원은 같은 종목에서 팀 선배이자 세계 정상급 기량을 뽐냈던 이승훈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했다. 이승훈은 금메달을 가져갔지만 정재원은 빈손에 그쳤다. 그러나 4년 후인 베이징에서는 당당하게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정재원은 경기 후 “페이스메이커 작전을 수행하며 성장했기에 지금의 결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승훈이형이 조언을 많이 해줘 다양한 전략을 풍부하게 배웠다”면서 “승훈이형과 함께 시상대에 오를 수 있어 더 기쁘다”고 고마워했다.
이승훈도 ‘후배 폭행 논란’으로 중징계(출전 정지 1년)를 받고 3년 만에 국가대표에 복귀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통산 여섯 번째 올림픽 메달(금2ㆍ은3ㆍ동1)을 목에 걸며 진종오(사격), 김수녕(양궁)과 함께 한국 선수 올림픽 최다 메달 타이 기록을 세웠다. 2010 밴쿠버 대회부터 이번까지 12년 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메달을 신고했다. 이승훈은 “(대기록을 세워) 영광스럽다. 개인적으론 첫 동메달이라 기쁘고 만족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평창올림픽 ‘왕따 주행’ 논란의 중심에 섰던 김보름(29)에게도 이번 올림픽은 남다른 대회로 남게 됐다. 김보름은 19일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5위에 이름을 올렸다. 평창 때 은메달리스트였다가 이번엔 메달에 실패했지만 김보름은 “‘아무도 응원 안 해주면 어떡하지’ 고민했다. 많은 응원을 받으며 경기를 해 다행”이라며 밝게 웃었다. 그러면서 “메달을 땄을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면서 “(내 스스로에게) 잘 버텨줘서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그는 “지난 4년이 정말 힘들었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평창올림픽 후 특별 감사를 통해 “팀 추월에서 (김보름의) 고의적인 왕따 주행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매스스타트 출전 3일 전인 지난 16일에는 '왕따 주행'을 주장했던 노선영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고, 표창원 전 의원 등 당시 김보름을 비판했던 유명인들의 사과와 응원도 이어졌다.
이로써 한국 빙속은 베이징올림픽에서 은메달 2개(차민규ㆍ정재원)와 동메달 2개(김민석ㆍ이승훈)를 획득하며 성공적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특히 정재원과 김민석은 모두 20대 초반으로 2026 토리노-코르티나담페초올림픽까지 선전이 기대된다. 김민선(23)도 이번 대회에서 가능성을 보였다. 2회 연속 은메달을 목에 건 정재원은 “더 성장해서 더 많은 종목에 출전하고 싶다. 더 나은 선수가 돼 메달을 더 따내고 싶다”면서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