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동계올림픽 축제가 20일로 막을 내린다. 다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중국은 스포츠 이벤트로 체제 우월성을 과시하는 데 주력했다. 시진핑 주석 3연임과 장기 집권을 위한 마지막 관문을 성공적으로 넘어섰다. 국제사회의 곱지 않은 시선 따윈 아랑곳없다. 올가을 ‘황제 즉위식’을 향한 중국의 질주에 가속이 붙었다.
17일 베이징올림픽 조직위원회 기자회견장. ‘대만 선수단이 폐회식에 참석하나’라는 질문이 나왔다. 대만은 당초 4일 개회식에 불참하려다 막판 입장을 바꾼 전례가 있다.
옌자룽 조직위 대변인은 엉뚱하게 답했다. 그는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전 세계에 중국은 하나밖에 없다는 점”이라며 “대만은 중국과 분리될 수 없는 일부”라고 말했다. 뜬금없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앞세워 분위기를 몰아갔다. 중국이 하고 싶은 말만 강조한 셈이다.
중국은 대회 직전 “올림픽 정신에 반하거나, 특히 중국의 법과 규정에 어긋나는 말과 행동은 처벌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언뜻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지침에 부합하는 조치로 비친다. 반면 중국의 주장은 여과 없이 드러냈다. 미국 NPR은 “수많은 인권 유린 의혹 속에 열린 베이징올림픽이 정치적 논란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올림픽에 앞서 ‘스포츠 정치화’에 거칠게 반발했다. 미국과 서구국가들이 정부 대표를 보내지 않는 ‘외교적 보이콧’으로 중국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이콧의 파장이 예상보다 약하자 중국은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며 역공으로 돌아섰다. 일본 닛케이 아시아는 “아돌프 히틀러의 팽창주의를 뒷받침한 1936년 베를린올림픽을 연상케 한다”고 혹평했다.
중국은 외교적 보이콧 대열에서 이탈해 정부 대표단을 파견한 한국에 각별히 공을 들였다. 하지만 개회식에 한복이 등장한 데 이어 쇼트트랙 편파 판정 악재가 겹쳤다. 올해 수교 30주년 의미가 퇴색할 정도로 양국 국민감정은 격렬하게 충돌했다.
사태를 수습해야 할 재외공관이 싸움을 붙이는 나팔수로 나섰다. 주한중국대사관은 9일 “일부 한국 언론과 정치인들이 중국 정부와 올림픽에 화살을 돌려 반중 정서를 부추긴다”고 주장하며 엄중한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에서는 중국 오성홍기를 찢었고, 중국 네티즌은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한국 연예인들을 저격하며 맞섰다.
중국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양옌룽 산둥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에 “중국의 민족주의 독설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한국과 우호교류를 증진시킬 기회를 놓쳤다”며 “한중 문화ㆍ민간 교류가 긴밀한 경제관계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어 정치적 상호신뢰를 저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9개를 땄다. 중국이 겨울올림픽에서 미국(8개)을 제친 건 처음이다. 금메달 5개로 역대 최고성적을 거둔 2010년 밴쿠버올림픽을 훨씬 뛰어넘었다. 개막 전날 시 주석이 “체육이 강하면 중국이 강하고, 국운이 흥하면 체육이 흥한다”고 강조한 대로 맞아떨어졌다.
중국은 스포츠 강국의 기세를 몰아 미국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특히 국내총생산(GDP)이 미국과 맞먹는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실제 양국의 격차는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미국은 GDP 1조 달러를 1969년에 달성한 반면 중국은 1998년에 1조 달러를 넘어서 29년의 차이가 났다. 하지만 10조 달러 돌파는 미국 2000년, 중국 2014년으로 간격이 14년으로 줄었다. 미국은 2018년 GDP 20조 달러에 도달했는데 중국은 2023년 같은 성적을 거둘 전망이다. 예상대로라면 격차를 다시 5년으로 좁히는 것이다. 신랑차이징은 “연평균 성장률을 중국 6%, 미국 2%로 가정한다면 GDP 30조 달러 고지는 중국이 먼저 올라설 것”이라고 전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19일 “중국 국민의 지지가 없었다면 올림픽이 이처럼 탁월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왕이 외교부장은 “베이징올림픽의 성공은 중국의 성공이고 세계의 성공”이라며 “불안정한 세계에 평화와 단결의 소중한 원동력을 불어넣었다”고 자화자찬했다.
중국은 “우리가 올림픽을 살렸다”는 자부심에 들떴다. 비용 문제로 2022년 겨울올림픽 개최 후보도시가 잇따라 외면하는 상황에서 중국이 책임을 떠안았다는 것이다. 환구시보는 “사회간접자본(SOC)을 확충하고 일자리를 늘리고 겨울스포츠 저변을 넓혀 소비지출을 증진하는 효과를 거뒀다”며 “중국의 단결과 자신감을 강화하고 국제적 이미지를 높이면서 신망을 얻고 체면을 갖췄다”고 자평했다.
동시에 중국은 “성화봉송을 3일로 줄여 비용을 절감하고 경기장을 재활용하는 등 효율적인 올림픽을 치렀다”고 강조했다. 1960년 이후 올림픽 개최 비용이 당초 예상보다 평균 3배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선방했다는 주장이다. 반면 월스트리트저널은 “대회 유치과정에서 중국이 밝힌 30억 달러(약 3조6,000억 원)보다 5배 많은 최소 160억 달러(약 19조 원) 넘게 쓴 것으로 추산된다”고 전했다.
대회 직전까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베이징을 엄습하면서 방역 불안감이 적지 않았다. 올림픽을 치른 뒤 중국은 “외부와 차단된 폐쇄 루프 안에서 집단감염 없이 전염병을 통제했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23일 이후 선수와 관계자 436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의 ‘제로 감염’ 원칙을 비판해온 서구의 주장이 틀렸다는 점을 보여줬다”면서 “향후 열릴 올림픽의 모범사례로서 코로나에 대응하는 국제 스포츠 이벤트의 방역 기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지난해 도쿄올림픽과 비교해 확진자(430명) 수치만 놓고 보면 별 차이가 없어 중국의 이 같은 주장이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