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대통령 "외부 위협받으면 핵무장 고려"…개헌 투표 앞둬

입력
2022.02.18 18:51
11면
27일 '중립국', '비핵화' 빠진 개헌안 국민투표
러시아 도움에 대한 빚 갚기라는 분석도

러시아의 우방이자 남쪽으로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벨라루스가 핵무장 의도를 노골적으로 공개했다. 이달 말에는 영토 내 핵무기를 배치하는 내용을 담은 개헌안 국민투표도 실시한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관영 벨타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외부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핵무기를 배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적들이 멍청한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핵무기는 물론 그보다 더한 무기도 배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러시아로부터 S-400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을 수입해 수도 민스크에 배치하겠다고 덧붙였다. S-400은 러시아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다.

루카셴코 대통령의 발언은 오는 27일 예정된 개헌 국민투표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개헌안에는 기존 헌법에 규정된 '벨라루스는 국토 비핵화와 중립국화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조항이 삭제돼, 핵무장 가능성을 열어 뒀다는 해석을 낳았다. 개헌안이 공개되기 한 달 전 루카셴코 대통령이 러시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핵무기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벨라루스는 1991년 구소련 붕괴 후 자국 영토에 배치돼 있던 핵무기와 전략 폭격기 등을 러시아에 넘겨 폐기하고 '비핵화된 중립국' 상태를 유지 중이다.

일각에서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장기 독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친러 성향을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개헌안에는 루카셴코 대통령이 2035년까지 집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1994년 집권한 그는 앞서 1996년과 2004년, 두 차례의 개헌을 통해 집권을 연장해 왔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의 도움도 받았다. 지난해 벌어진 벨라루스와 유럽연합(EU) 간 난민 사태와 2020년 벨라루스 대규모 반정부 시위 당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루카셴코 대통령을 적극 두둔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개헌안이 푸틴 대통령을 향한 루카셴코 대통령의 ‘빚 갚기’라는 해석도 나온다. 러시아산 핵무기와 전략무기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푸틴 대통령과의 밀월 관계를 굳건히 하려 한다는 의미다. 미국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달 AFP통신에 개헌안 내용을 두고 “루카셴코의 취약점을 잘 아는 러시아가 그간 쌓아 놓은 차용증을 조금씩 요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장수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