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시장의 85%를 장악한 롯데와 해태, 빙그레가 4년간 아이스크림 판매 가격을 담합했다가 1,35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이는 식품업계 담합 사상 최대 규모 과징금이다. 물가상승 압력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가계 부담을 높이는 담합에 대해 엄정한 대처를 하겠다는 정부 의지가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정위는 17일 아이스크림 판매·납품 가격과 소매점 거래처 분할 등을 담합한 △롯데지주 △롯데제과 △롯데푸드 △빙그레 △해태제과 등 5개 아이스크림 제조 사업자에 과징금 1,350억4,500만 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중 빙그레와 롯데푸드는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여기다 소매점 분할에 동조한 △삼정물류 △태정유통 △한미유통 등 부산지역 3개 유통사에도 시정명령을 내렸다.
이번에 매겨진 과징금은 식품 관련 담합에 대한 과징금 중 가장 규모가 크다. 과거 1,362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라면값 담합’이 있었지만, 대법원이 라면 제조사 손을 들어주며 과징금을 취소한 바 있다. 공정위는 아이스크림 담합 관련 매출액이 3조3,000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판단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회사는 임원이나 영업팀장 모임을 수시로 갖고 그 자리에서 한 회사가 가격 인상 계획을 밝히면 다른 회사가 뒤따라 인상하겠다며 호응하는 등의 방식으로 담합을 했다.
이는 2018년 말~2019년 초 이어진 △월드콘(롯데제과) △구구콘(롯데푸드) △부라보콘(해태제과) 가격 인상 사례에서 드러난다. 팀장급 모임에서 한 회사가 “콘 아이스크림 가격을 1,3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리겠다”고 슬쩍 흘리자 다른 회사 팀장이 “우리도 내부 보고 후 가격을 올리겠다”고 호응해 담합이 성립된 것이다.
2016년 2월에는 경쟁사가 거래중인 소매점을 자신의 거래처로 만들기 위한 영업경쟁을 하지 말자는 합의도 진행했다. 경쟁 과정에서 납품가격을 낮추는 등 출혈 경쟁을 막기 위해서다. 실제 경쟁사가 납품하는 소매점을 빼앗은 횟수는 2016년 719개에서 2019년 29개로 대폭 줄었다.
여기에 더해 편의점이 진행하는 ‘2+1’ 행사 등 판촉행사 대상 품목을 3~5개로 제한하고, 편의점 마진율을 45% 수준으로 낮추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현대자동차가 진행한 아이스크림 구매 입찰에서는 낙찰 순번을 미리 정해 번갈아 아이스크림을 납품하자는 합의도 했다.
정부는 지속되는 물가 상승에 대응해 식품업계 간담회에 공정위 관계자도 함께 참석하도록 하는 등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다. 앞서 이억원 기획재정부 제1차관이 물가관계차관회의를 통해 "국민 체감도가 높은 장바구니 품목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가운데 역대 최대 과징금이 매겨진 이번 담합 제재도 가공식품 업계를 향한 무언의 압박이 될 수 있다. 조홍선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장은 "이번 사건은 2007년 한 차례 제재에도 또다시 발생한 담합사건"이라며 "먹거리 분야와 생필품 등 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 가계 부담을 가중시키는 담합에 대한 감시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