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쏜다' '주당 8000원' 역대급 배당 쏟아져도… "중국보다 짜다"

입력
2022.02.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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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주주 파워에 배당금 확대했지만
배당성향·수익률 여전히 세계 꼴찌 수준
분기 배당 활성화... "주주권리 제도화돼야"

지난해 사상 최대 이익을 거둔 기업들을 중심으로 '역대급' 배당이 예고됐지만, 국내 상장사의 배당 수준은 여전히 전 세계 최하위권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소액주주 입김을 의식한 기업들이 전보다 강화된 주주환원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 글로벌 수준에는 못 미치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국가마다 산업별 특성이 달라 배당성향을 획일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장의 배당보다 투자를 통한 기업가치 상향이 주주에게 장기적으로 더 이득일 수 있다는 얘기다.

힘세진 소액주주에 역대급 배당 출격

16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이날까지 배당금을 발표한 509개(삼성전자 제외) 상장사의 지난해 현금 배당액은 약 24조 원으로 집계됐다. 해당 기업들의 2020년 배당액(약 17조 원)을 훌쩍 웃도는 규모다. 업계에선 현금 배당액이 전년 대비 약 6.7% 증가했던 2020년에 이어 2021년 전체 배당액 규모도 전년보다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2020년 배당금 총액이 1조 원을 넘는 기업은 삼성전자가 유일했지만, 지난해엔 현대차, 포스코 등 7곳으로 늘었다.

주요 기업들은 연일 '배당 서프라이즈'를 강조하고 있다. SK는 최근 2015년 통합지주사 출범 이후 최대 배당(주당 8,000원)을 발표했다. 앞서 기아는 지난해 기말 배당금을 주당 3,000원으로 결정했는데, 이는 전년보다 세 배나 인상된 규모다. 이자 이익을 앞세워 '역대급' 순익을 거둔 국내 금융지주들도 사상 최대 규모(약 3조8,000억 원) 배당을 예고했다.

배당금 확대는 국내 증시에 뛰어든 개인투자자들이 늘면서 주주환원에 대한 기업들의 인식이 커진 것과 맞물린다. 기업들로선 최근 2년 새 급증한 소액주주들의 입김과 요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고, 이는 배당금 확대로 이어진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최유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국내 주주환원 규모는 상향 추세"라며 "개인투자자 자금이 대거 유입되면서 '주주의 몫'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인색한 배당성향... 中에도 뒤져

하지만 글로벌 기준에 비춰볼 때 국내 기업의 배당 의지는 여전히 부족하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기업의 배당성향은 약 27%로 추산됐다. 이는 국내 기업이 벌어들인 수익 중 27%가량을 주주에게 배당으로 지급한다는 뜻이다. 미국(41%)과 프랑스(45.4%), 영국(56.4%) 등에 크게 뒤지는 데다, 홍콩(57.8%), 일본(31.1%), 중국(28.4%) 등 아시아 주요국들에도 밀리며 사실상 전 세계 최하위권 수준이다.

주당 배당금을 주가로 나눈 배당수익률도 세계 꼴찌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데이터업체 레피니티브 IBES가 추산한 지난해 우리나라 배당수익률도 1.52%로, 25개국 중 인도(1.19%)와 터키(1.28%) 다음으로 낮았다. 기업들이 실적 회복에 맞춰 배당을 확대한다고는 하지만, 주요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배당에 인색하다는 뜻이다.


이에 시장 전문가들은 개인투자자들을 시장으로 더 불러모으기 위해서는 배당 횟수를 늘리는 등 주주권리 확대에 더 신경 써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분기·중간 배당은 '못' 하는 게 아니라 시스템 개선 등 추가 비용 때문에 기업들이 '안' 하고 있는 것"이라며 "주주의 복리·후생을 적극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 일각에서는 고배당이 꼭 주주가치 제고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도 나온다. 중견 IT 기업 상장사 관계자는 "이익이 생기는 대로 주주에게 배당을 하다 보면 기업은 적절한 투자 기회를 잃을 수 있다"며 "당장의 배당보다는 투자를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게 장기적으로 주주 이익을 더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재계 관계자도 "국내 기업들은 수출 환경 등 대외 변수에 따라 이익 변동성이 유독 크고, 사내 유보금을 확대해야 하는 등 고배당을 지속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며 "주주환원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는 데 반대하지 않지만, '배당은 무조건 선'이라는 인식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조아름 기자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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