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여름 미국 서부 12개 주(州)를 초토화시킨 초대형 산불과 역대급 폭염은 일시적인 기상 이변이 아니었다. 최근 이 지역의 고온 건조한 기후는 1,20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대가뭄(Megadrought)’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더 큰 문제는 가뭄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1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와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캘리포니아대(UCLA) 연구진은 이날 국제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에 발표한 논문에서 “2000년부터 2021년까지 22년간 미국 서부 지역은 측정 가능한 최대 범위인 서기 800년 이후 1,200년 만에 가장 극심한 대가뭄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캘리포니아, 와이오밍, 유타, 네바다, 애리조나, 아이다호를 비롯한 미국 서부 주와 멕시코 북부 등에서 나무 나이테 너비를 이용해 과거 토양 속 수분 함유량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기후 변동을 추적해 이러한 결과를 얻었다. 연구진은 “특히 지난해 여름은 최근 300년 사이 2002년에 이어 두 번째로 건조한 해였다”며 “그로 인해 대가뭄이 극한으로 치달았다”고 분석했다.
당시 미국 서부 3분의 2를 덮친 가뭄과 고온 현상으로 수십 개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 넉 달 넘게 꺼지지 않았다. 화마가 뿜어낸 연기가 바람을 타고 4,000㎞가량 떨어진 동부 대도시 뉴욕을 덮쳤을 정도다. 최근에도 캘리포니아주 남부는 이례적인 ‘겨울 더위’로 섭씨 32도까지 오르는 등 8월 중순 날씨를 보이고 있다.
연구진은 지구 온난화가 없는 가상 세계를 상정한 다음 실제 상황과 비교ㆍ분석한 결과 “대가뭄 요인 42%가 인간 활동에 의한 온난화에서 직접 기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를 이끈 기후과학자 파크 윌리엄스 UCLA 교수는 “기후변화가 없었다면 충분히 많은 비가 내린 2005~2006년에 가뭄이 끝났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논문을 검토한 줄리 콜 미시간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강수량보다 기온이 가뭄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며 “강수량은 시기별ㆍ지역별 편차가 크지만, 인간이 뿜어낸 온실가스는 지구 기온을 꾸준히 끌어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대가뭄이 향후 최소 10년간 더 이어질 수 있다는 비관적 전망도 나왔다. 앞선 대가뭄은 대략 30년 기간이었던 것으로 분석됐다. 윌리엄스 교수는 “가뭄은 2022년 현재도 한창이고 내년에도 이어질 게 분명하다”며 “만약 이번에도 30년간 지속된다면 지난 시기보다 훨씬 혹독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뾰족한 대책은 없다. 한두 해 강수량이 많다고 해서 해소될 가뭄이 아니라는 얘기다. 윌리엄스 교수는 “가뭄을 끝내려면 평균을 상회하는 강수량이 수년간 이어져야 하는데 순전히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가뭄이 끝나더라도 곧이어 또 다른 가뭄이 시작될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