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날 알면 더 잘 살까' 전통연희와 함께 풀어가는 질문

입력
2022.02.10 04:30
20면
전통연희계 젊은 피 '연희앙상블 비단'
신작 'TIMER(타이머)' 연습 현장 가보니
뚜렷한 서사 구조에 우리 장단·무용 녹여내

"내 임종식을 이날 준비해주세요." 자신이 죽는 날을 정확히 아는 듯한 이 터무니없는 요청이 이곳에선 자연스러운 현실이 된다. 미래에는 인간의 수명을 알 수 있게 된다는 상상을 기반으로 한 공연 'TIMER(타이머)' 연습실 현장이다.

전통예술 공연단체인 '연희앙상블 비단'이 신작 연습에 땀을 흘리고 있는 지난 3일 서울의 한 연습실을 찾았다. 개막을 일주일여 앞두고 모든 스태프가 모여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해 보는 '런스루' 연습이 한창이었다. 대사를 들으며 '내 수명을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에 잠길 때쯤 한편에서 북, 징 등이 울리는 우리 장단이 퍼졌다. 심장을 울리는 타악기 소리는 연습실을 뚫고 나갈 것처럼 우렁차고 때론 빠른 속도감을 느끼게 했지만, 다른 전통연희 공연을 볼 때처럼 마냥 흥이 나는 장단은 아니었다. 철학적 질문을 던지듯 오히려 암울한 기분이 들 정도로 무거운 소리였다. 5분여간 몸을 움직이던 출연자들의 연주 장면이 한 차례 끝나자 연습실에는 거친 숨소리만이 들렸다.

'타이머'는 전통연희 공연계의 젊은 피인 연희앙상블 비단의 새로운 도전이다. 이들은 201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들이 의기투합해 시작한 팀이다. '깽판: 우리가 살 판' 공연으로 여러 곳에서 호평을 받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초청 공연도 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다른 공연 단체들처럼 고비를 맞았다. 조한민 연희앙상블 비단 대표는 "지금은 원년 멤버가 3명 남았고 (살림을) 꾸려가는 게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던 중 '타이머'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 제작 지원 사업인 창작산실에 선정돼 도약을 준비하게 됐다.

이 작품은 인간이 자신의 수명을 알게 되는 미래가 배경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주는 플래너인 주인공 한시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임종식을 준비해 달라는 거액의 제안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직접 극본을 쓴 연출 여울(본명 김소현)은 "코로나19 등으로 갑자기 쉬는 시간이 생겼다"며 "달리기만 하다 쉬는 동안 죄책감이 드는 내 모습을 보고 현대인들이 시간에 대해 느끼는 압박을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간의 효율성을 따지는 시대에 관객에게 '무엇에 의해 지금이라는 시간을 소비하는가'를 묻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서사가 명확하고 연극적 요소가 뚜렷한 것이 전작과 다른 이번 작품의 특징이다. 이는 전통연희 공연이 생소한 대중도 조금 더 편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물론 전통연희를 다른 장르에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조 대표는 "전통연희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 그 색채를 흐리지 않으려고 고민했다"면서 "연희를 이루는 요소가 무엇일까를 생각하고 그것을 재조합해 가면서 극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동작과 소품, 음악 등 전통연희 요소의 농도가 1부터 100까지 있다고 한다면, 1부터 시작해 마지막에 100까지 점차 올라갈 수 있게 구성했다"고 여울 연출은 덧붙였다.

이번 공연에는 전통연희에 대한 연희앙상블 비단의 애정에 공감하는 동료들이 참여했다. 판소리 전공자 김나니, 봉산탈춤 전수자 이정동 등을 포함해 총 9명이 무대에 선다. 공연은 이달 11, 12일 양일간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열린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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