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익 PD "민주당서 센터장에 '소송 포함 강력 항의'"... SBS "객관성 훼손"

입력
2022.02.07 19:51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 비판? 
SBS 라디오 PD 하차 외압 논란
이 PD "중립성 훼손? 동의 못해"
야당·SBS 노조 "유신 정권 보도 통제" 비판 
SBS 라디오센터는 외압 의혹 부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를 비판하는 듯한 발언을 한 뒤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이재익 SBS PD가 7일 "민주당에서 팀장과 센터장을 통해 소송을 포함한 강력한 항의를 했다고 들었다"고 주장했다. 외압 논란이 일자 민주당 측은 "방송은 공인이 하는 것인 만큼 특정 후보를 찍어라, 찍지 말라는 것은 선거법에 저촉되는 발언"이라고 맞섰다.

이를 두고 야당과 SBS 노조는 "반민주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일"이라고 여당을 비판했다. 반면, SBS 라디오센터는 이 PD의 인사 조치에 대해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대원칙이 훼손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PD는 이날 본보와 전화 통화에서 "며칠 전 방송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 대해 '검찰총장까지 지낸 사람이 장모 수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혐의가 없다고 먼저 말하는 건 국민을 졸로 보고 있는 태도'라고 말했다"며 "민주당 측에서 문제 삼은 방송 발언의 수위가 앞서 방송과 비교해 특별히 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4일 방송에서 그룹 DJ DOC의 노래 '나 이런 사람이야'를 틀고 이 노래 관련 이 PD가 한 발언을 문제 삼은 것으로 전해졌다.

'나 이런 사람이야'엔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막 대하고 이 카드로 저 카드 막고'란 가사가 나온다. 이 PD는 당일 방송에서 "가사가 의미심장하다. 이런 사람은 절대로 뽑으면 안 된다. 이런 사람이 넷 중에 누구라고 얘기하진 않았다"며 "여러분들 머릿속에 있겠죠. 이런 가사를 들었을 때"라고 말했다. 이어 가사를 언급하며 "그런 사람을 뽑으면 되겠냐, 안 되겠냐, 안 되겠죠. 누구라고 얘기하면 안 된다. 그럼 이 방송 없어진다"며 웃었다. 이를 민주당이 이 후보 아내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는 게 이 PD의 주장이다.

이 방송 후 SBS는 이 PD를 인사 조치했다. 이 PD는 "진행자 자리에서 물러나는 걸로 6일 회사의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7일부터 라디오에서 하차했다. 방송사에서 개편 시즌이 아닌데 프로그램 진행자를 중도에 교체하기는 이례적이다. 회사의 갑작스러운 인사에 대해 이 PD는 "내 발언이 공정성이나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지적엔 동의할 수 없지만, 회사의 인사 조치는 따르겠다"고 답했다.

이 PD의 주장에 대해 권혁기 민주당 선대위 공보부단장은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이 PD가 방송 중 이재명 후보 실명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이 후보라고 인식할 수 있는 내용으로 '대통령으로 뽑으면 안 된다' 이런 표현을 썼다"고 그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이 PD 하차로 외압 논란이 인 것에 대해선 "(인사) 조치는 SBS가 한 것"이라며 "저희가 이래라 저래라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이 PD의 하차를 두고 "유신 정권을 떠올리게 하는 보도 통제"라고 여당을 비판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선대본 상황실장은 이날 선대본부 회의에서 "민주당의 언론과 방송 재갈 물리기 시도가 도를 넘고 있다"며 "국민의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언론중재법 개정을 강행하려 했던 이유도 더욱 분명해졌다"고 비판했다.

김창인 정의당 선대본 대변인도 이날 "유신 정권의 금지곡 사태가 떠오를 만큼 어처구니없는 진풍경"이라며 "민주당과 이 후보는 본 사건에 대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적이 있는지 정확하게 해명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SBS는 외압설을 부인했다.

SBS 라디오센터는 이날 입장문에서 "방송 내용에 대해 이재명 후보 캠프 측의 항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그런 항의는 종종 있는 일이고 이 때문에 이 PD가 하차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사측의 해명과 달리 SBS 내부에선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SBS 본부는 "권력을 이용해 다짜고짜 언론사 간부에게 항의하는 건 명백한 언론자유와 방송독립 침해"라며 "노사 대표가 참여하는 공정방송협의회를 신속히 개최해 진상규명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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