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마무리하던 앵커가 수어로 멘트를 전해 화제다. 평소 화면 오른쪽 하단에 작게 자리하던 수어통역사는 화면의 절반을 차지했고, 앵커는 제2회 '한국수어의 날'을 알리며 직접 수어로 뉴스를 마무리했다. 누리꾼들은 한국수어와 청각장애인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3일 KBS1 9시 뉴스 클로징 장면을 보던 시청자들은 평소와는 다른 화면 구성을 볼 수 있었다. 평소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작던 수어통역사의 화면이 전체의 절반을 차지한 것이다. 클로징 멘트를 시작한 이영호 앵커는 "오늘은 제2회 한국수어의 날"이라면서 "눈과 손으로 전하는 우리만의 언어를 기념하는 날"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서로 조금씩 다른 모든 사람이 수어로 다 같이 반짝이는 날을 기대하면서 오늘 아홉 시 뉴스를 마무리하겠습니다"라는 멘트를 수어와 함께 전했다. 반으로 나뉜 화면 속 이 앵커와 김동호 수어통역사가 함께 수어를 하는 모습은 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줬다.
방송이 끝난 후 온라인에서도 누리꾼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한 누리꾼이 SNS에 해당 장면 영상을 공유한 게시물이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퍼지며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누리꾼들은 "이게 바로 수신료의 가치", "왠지 모르게 눈물 난다"며 감동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수어를 배우고 있다는 한 누리꾼 (myfavor******)은 "(한국수어가) 특별한 날이 아닌 평범한 일상에 스며들어 그저 평범함으로 받아들이는 날이 오길"이라고 전했다.
국내 35만 명 청각장애인들의 언어인 수어가 뉴스에서 통역으로 제공된 것은 2020년 9월부터였다. 이전에는 수어통역 방송은 현행 방송법으로 5%의 의무 편성비율이 지정되어 있는 것이 전부였다. 2018년부터 장애인 인권 단체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은 국제 행사와 재난방송, 방송사 메인 뉴스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할 것을 주장해왔다. 공식적 문제 제기에도 당시 방송사들은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2019년 2월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 11개 장애인 인권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에 "지상파 3사가 메인 뉴스에서 수어통역을 제공해야 한다"며 진정을 넣었다. 인권위는 진정을 받아들여 지난해 4월 지상파 3사에 수어 통역 제공을 권고했다.
당시 지상파 방송사들은 인권위의 권고에도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MBC는 "비장애인 시청자의 시청권 제약과 불만 제기"를 언급한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해 8월 KBS는 가장 먼저 메인 뉴스에 한해 수어 통역을 포함한 방송을 송출하기로 결정했고, 그 후 MBC와 SBS도 이어 수어통역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정부 브리핑과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도 수어 통역사가 배치되는 등 변화도 일었다. '한국수화언어법'에 나온 '한국어와 동등한 한국 수어'라는 문구가 그제서야 실현된 것이다.
다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는 지적도 많다. 수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손동작뿐 아니라 표정 또한 매우 중요한 요소이지만 방송에서 송출되는 통역 화면이 너무 작아 표정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KBS는 수어 통역의 크기를 전체 화면의 16분의 1 정도로 제공하고 있다. 수어 통역사가 화면 전면에 등장하는 BBC뉴스와 비교하면 너무 작다.
한편 KBS는 지난해 2020 도쿄올림픽의 클로징 멘트로도 누리꾼 사이에서 관심을 모았다. 올림픽의 폐막식을 중계하던 이재후 아나운서는 "제32회 도쿄 '비장애인 올림픽' 한국방송 KBS의 모든 중계 방송을 마칩니다"라고 방송을 마무리했다. 도쿄 올림픽을 '비장애인 올림픽'이라고 표현함으로써 이후 이어질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을 상기시켜준 것이다. 이 아나운서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중계 마무리 발언에서도 '비장애인 올림픽'이라고 말했다.
'비장애인'은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2016년 법제처는 '정상인'이라는 표현이 '장애인은 비정상'이라는 차별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고 법령용어를 '비장애인'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는 주로 장애인 관련 기사나 글에서 제한적으로 쓰고 있다.
당시 누리꾼들은 "비장애인, 장애인 할 것 없이 모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선수들"이라고 말했다. 또한 '비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두고 "어찌보면 사소한 단어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큰 감동을 받았다"며 "이렇게 작은 변화가 큰 변화를 일으킬 거라고 믿는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