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나타내는 근원물가 상승률조차 10년 만에 3% 벽을 넘어섰다. 물가의 추세적 상승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제유가는 100달러 돌파 초읽기에 들어갔고 국제곡물가격마저 전례 없이 치솟아 ‘물가 쇼크’ 우려가 커지고 있다. 4개월 연속 3%대를 기록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이달 4% 안팎까지 오를 가능성이 커 경제 전반의 충격을 피하긴 어려울 전망이다.
통계청이 4일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근원 물가 상승률은 3.0%를 기록했다. 2012년 1월(3.1%) 이후 10년 만에 다시 3%대로 올라선 것이다. 근원물가는 계절이나 외부 환경에 영향 받는 농산물·석유류는 제외하고 산출한 값이다. 근원물가가 오른다는 건 인플레이션 압력이 전방위적으로 작용, 물가 상승세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3.6% 올라 지난해 10월(3.2%)부터 4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소비자물가가 넉 달 연속 3%대 상승률을 나타낸 것 역시 약 10년 만이다.
소비자물가의 상당 부분은 정부가 대응하기 어려운 대외 불확실성이 끌어올렸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글로벌 공급망 불안, 이상기후 등으로 국제유가·식량가격이 큰 폭으로 뛰면서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절반 이상(1.9%)을 외식물가(0.69%포인트)와 농축수산물(0.55%포인트), 석유류(0.66%포인트)가 밀어 올렸다.
문제는 이 같은 요인이 해소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점이다. 우선 물가 급등의 뇌관은 국제유가다. 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선 배럴당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2.01달러(2.28%) 오르며 90.27달러에 거래됐다. 올해 첫 거래일인 지난달 3일(76.08달러)에 비해 무려 19% 가까이 오른 수치로, WTI 값이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선 건 2014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브렌트유에 이어 WTI까지 배럴당 90달러를 넘기면서 국제유가 100달러 시대가 코앞까지 왔다는 분석이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대외협력실장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유럽 송유관 테러에 따른 공급불안 등 현재로선 국제유가 상승요인이 다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 글로벌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브렌트유가 올해 하반기 배럴당 100달러, JP모건은 배럴당 125달러를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식량가격 오름세도 악재다. 이날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1월 세계식량가격지수(135.7)는 ‘아랍의 봄’ 사태로 국제 식량 가격이 크게 올랐던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게다가 1,200원 안팎까지 오른 원·달러 환율도 가뜩이나 높아진 석유류·식량 수입 가격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국제유가 흐름이 2~3주 뒤 국내 시장에 반영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달 국내 휘발유 가격은 L당 1,800원까지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가공식품 역시 도미노 가격인상 행렬이 이어지고 있어 향후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4% 돌파도 시간문제일 거란 잿빛 전망이 나온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대외적인 물가상승 요인이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당분간 물가는 상당 폭 오름세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