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필리핀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둘러싼 정치ㆍ사회적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집권세력의 유력 대선 후보에 대한 암살이 SNS에 예고되자 정부는 SNS 계정 정보를 의무적으로 등록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에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대통령의 ‘정치 공작’이라는 반발이 일면서 정국이 혼란에 휩싸였다.
4일 필리핀스타 등 현지매체에 따르면, 필리핀 국회는 전날 자국 내 SNS 사용자들이 새 계정을 만들 때 법률적 신원 및 전화번호 등을 의무적으로 등록하고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법안(가입자 신원 모듈 등록법)을 승인했다. 해당 법안은 등록한 정보가 허위일 경우 거액의 벌금은 물론 징역형까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필리핀 정부는 "대선을 앞두고 SNS를 통한 불법 선거운동과 협박 등의 범죄가 증가해 불가피하게 입법을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번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로 꼽히는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상원의원은 지난달 28일 "우리는 매일 모여 마르코스를 암살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는 틱톡 글을 발견, 사법당국에 수사를 요청한 바 있다. 현재 필리핀 사이버범죄수사국은 해당 글을 작성한 인원을 찾기 위해 틱톡 측에 자료를 요청하는 등 공개 수사를 벌이고 있다.
현지 민주 세력들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정권의 SNS 단속 의지를 '정치 공작'이라 의심하고 있다. 대통령에 출마한 마르코스 전 의원은 현재 두테르테 대통령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 카르피오 다바오 시장을 부통령 후보로 내세워 대선에 도전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친정부 지지자들이 SNS 계정을 개설해 이들을 응원해 왔는데, 지난달 트위터는 마르코스 지지자들의 계정 300여 개를 '스팸과 조작(spam and manipulation)에 관한 규정 위반'으로 폐쇄하는 등 개별 제재에 나섰다. 막무가내식 지지와 허위사실로 가득한 계정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反)마르코스 진영이 보기엔, 이번 SNS 계정 정보 의무 공개 조치가 “우리(마르코스 측)도 온라인 지지운동을 못하니 너희도 하지 말라”는 취지로 해석될 소지가 다분하다. 특히 국회를 통과한 이 법안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인가하면 즉시 시행된다는 점에서 정치적 동맹과 딸에게 권좌를 넘겨주려는 시도로도 해석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법률상 3연임을 하지 못하는 두테르테 현 대통령이 차차기 대권을 차지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 필리핀 대선 레이스는 마르코스 전 의원을 포함, 복싱 영웅인 매니 파키아오 상원의원, 프란시스코 도마고소 마닐라 시장, 레니 로브레도 부통령, 판필로 락손 상원의원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현지 여론분석기관 '펄스 아시아'의 작년 말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에 따르면, 현재 1위는 53%를 기록 중인 마르코스 전 의원이다. 마르코스 전 의원은 계엄령 등을 통해 21년 동안 장기 집권했던 같은 이름의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