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16, 17일이 삼일이지 왜 사흘이야?"
재작년 광복절 임시공휴일을 앞두고 '사흘' 논란이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우리말로 3일을 의미하는 사흘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EBS가 방송한 교양 프로그램 '당신의 문해력'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가제(假題)'의 의미를 묻자 한 학생이 "랍스터요!"라고 답한다. 가볍게 웃어넘길 일만은 아니다. 누구나 어려운 단어로 빼곡한 글을 받아들고 수차례 읽어도 이해를 못 한 기억이 한 번쯤 있지 않은가.
EBS가 '문해력'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꾸준히 이어가는 이유다. EBS는 지난해 6부작 교양 프로그램 '당신의 문해력'에 이어 13부작 '문해력 유치원'을 방영 중이다.
지난해 11월 시작한 '문해력 유치원'은 기초 문해력을 형성하는 시기인 6세 유아 12명을 대상으로 12주간 맞춤 커리큘럼을 제공한다. 프로그램을 연출한 김지원 PD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내가 지금 이렇게 해도 되나, 우리 애한테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갖고 있는데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문해력 부족 현상의 심각성을 반영하듯 프로그램 참여 아동 모집에는 지원자가 2,000명 넘게 몰렸다.
'문해력 유치원'의 목표는 단순히 한글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이 프로그램의 지난 방영분에서 최나야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문해력을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넘어 이를 활용해 개인적,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정의한다.
김 PD는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는 과정이 모두 문해력 영역에 있다"며 "집에서 아이들 성향에 맞는 방법으로 따라해 보라고 제안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제작진의 이 같은 바람은 방송을 시청한 부모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한 지역 맘카페에는 "영상을 보면서 아이가 부족한 부분은 더 채울 수 있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수도 있었다"는 시청 소감이 올라왔다.
문해력 부족은 영유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 성인에게도 문해력은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조병영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당신의 문해력'에서 "대학이나 직장에서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건 글을 이해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기본적인 능력이 있는가"라며 "문해력이 인생에서 좋은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 기회에 적합하지 않은 문해력을 갖고 있다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문해력 유치원'은 오는 9일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있다. EBS는 이 프로그램 종영 후에도 문해력 관련 콘텐츠 방영을 이어갈 예정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김 PD의 연출로 성인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문해력 콘텐츠를 선보인다. EBS는 지난달 25일 흩어져 있던 문해력 콘텐츠를 모아 필요할 때 영상을 찾아볼 수 있도록 통합서비스 사이트를 열기도 했다.
김 PD는 "문해력은 곧 자존감"이라고 강조했다.
"적당한 수준의 의사소통을 하고 직업도 구하는 정도의 사회생활을 하려면 문해력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걸 위해선 자존감, 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데 그 자존감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게 사실 문해력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