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보석 훔치고, 파견 외교관은 암살...30여년 냉각된 태국·사우디 관계 복원됐다

입력
2022.01.2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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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블루다이아몬드 도난 사건 이후 급랭
보석 못 찾고, 암살 사건 미제로 남았으나
쁘라윳 총리 공식 방문으로 외교관계 복원

'블루 다이아몬드 도난사건'을 계기로 단절됐던 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교관계가 30여년 만에 복원됐다.

25일(현지시간) AP·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는 전날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를 방문, 야마마 궁에서 실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만나 이같이 합의했다. 사우디 국영 SPA통신은 “양국이 가까운 미래에 대사를 임명해 상호 파견하고, 경제ㆍ교역 관계를 강화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양국은 에너지ㆍ석유화학에서부터 관광ㆍ숙박업에 이르기까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 협력하고, 공동투자도 모색하기로 했다.

외교관계 복원으로 사우디아라비아 항공은 오는 5월부터 리야드에서 방콕으로 가는 태국행 직항편 운항을 재개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사우디 메카로 매년 하지 순례를 떠나는 태국 이슬람 교도의 행렬이 다시 시작될 전망이다.

태국 정부 수반이 사우디를 공식 방문한 것은 1989년 ‘블루다이아몬드 도난 사건’ 이후 처음이다. 당시 사우디 왕자의 집에서 일하던 태국인 관리인이 50캐럿짜리 블루다이아몬드를 비롯해 2,000만 달러(약 238억 원) 상당의 보석을 훔쳐 태국으로 도주했다. 사우디는 보석들을 회수하기 위해 1990년 방콕에 외교관 3명을 보냈으나 암살됐고, 이후 파견한 왕실 자문관도 실종되면서 양국 관계는 급속히 냉각됐다.

사우디는 태국 주재 대사를 소환한 뒤 더 이상 대사를 보내지 않았고 사우디인의 태국 방문을 금지했다. 또 자국 내 태국인 근로자 약 20만 명을 추방하고 취업비자 발급ㆍ갱신도 중단했다.

보석을 훔쳤던 태국인은 이후 태국 경찰에 자수해 징역 7년 형을 선고 받고, 5년 복역 후 풀려나 승려가 됐다. 태국은 환수한 보석 일부를 사우디에 반환했지만, 사우디 측은 대부분 가짜라고 주장했다. 블루다이아몬드의 행방은 지금도 묘연하고, 외교관 살해와 자문관 실종은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태국 정부는 쁘라윳 총리가 전날 회담에서 “1989~1990년 태국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에 사우디 국민에게 유감을 표명했다”며 “이 사건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려는 열의를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는 새로운 관련 증거가 나오면 관할 당국이 사건을 다시 조사하게 하겠다고 사우디 측에 약속했다.

김청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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