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 하자 발생에 따른 책임을 모두 ‘을’인 하도급사업자에 떠넘긴 세진중공업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돼 고발 대상이 됐다.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둔 가운데, 재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갑'의 사례가 적발된 것이다.
공정위는 세진중공업의 하도급법 위반 행위를 적발해 법인과 대표자를 고발하고, 과징금 8억7,900만 원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24일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세진중공업은 2016년 1월~2020년 11월 69개 하도급 사업자와 계약서를 체결하면서 이들의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계약조건을 설정했다.
우선 2016년에 23개 사업자와 ‘기본계약서’를 체결하면서 “본 계약에 따른 제작·설치 시 발생한 산업재해(안전사고)에 대해 을은 ‘민·형사상 모든 책임을 진다” “하자발생에 대한 모든 책임은 을에게 있다”는 조항을 넣었다. 선박 부품 제조업 특성상 설치 과정에서 안전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은데 이 책임을 고스란히 협력업체에 떠넘긴 것이다.
공정위는 “원사업자가 부담해야 할 민원처리, 산업재해 등 관련 비용을 수급사업자에 부담시키는 약정은 하도급법상 금지된 ‘부당 특약’”이라고 밝혔다.
세진중공업은 나아가 “갑이 제작상 필요하다고 판단한 작업인 경우 계약범위 내에서 이를 시행해야 하고, 을은 계약금액 증액 또는 공기 연장을 요구할 수 없다”는 조항도 담았다. 추가 작업을 요구하면서도 기간은 그대로 유지해 부실 시공으로 이어질 여지를 만든 것이다.
세진중공업은 이 같은 특약 외에 하도급 대금을 정당한 사유 없이 일괄 인하하고, 계약서를 늦게 발급하는 등의 법 위반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세진중공업은 2017년 현대미포조선, 현대중공업 발주 공사와 관련해 전년 대비 3~5% 단가 인하를 해 총 5억 원을 깎았는데, 공정위는 “작업의 내용, 난이도, 소요 시간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단가를 인하했다”고 지적했다. 계약서 발급 과정에서는 총 3,578건의 계약서를 최대 400일까지 늦게 발급하기도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수급사업자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하거나 제한하는 계약조건을 제재한 것”이라며 “정당한 사유 없이 대금을 깎고 ‘선시공 후계약’ 하는 불공정 하도급거래가 지속되고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