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내 대선공약 같다”며 크게 호응했다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 미일 정상은 지난 21일 1시간 20분 동안 이어진 화상 회담에서 서로를 ‘조’와 ‘후미오’로 부르며 친밀한 관계를 구축했다는 설명이다.
23일 요미우리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두 정상은 회담의 절반가량을 중국에 대해 논의할 정도로 이 문제를 핵심 의제로 다뤘다. 바이든 대통령이 처음부터 중국에 대한 여러 과제를 얘기했고, 기시다 총리의 제안으로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의 대중국 견제 연합체인 ‘쿼드’ 정상회담을 올해 상반기 일본에서 열기로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중 정상회담 당시 시진핑 주석이 “쿼드 정상회담은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는 사실도 소개했다고 한다. 기시다 총리는 22일 트위터에 영어로 “일본에서의 재회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올리기도 했다.
요미우리는 두 정상이 이번 기회에 “개인적 신뢰 관계를 구축했다”고 전했다. 기시다 총리가 지론인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해 “격차나 분단 등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폐해를 (피하지 않고) 마주할 것”이라고 설명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내 대선 공약을 읽었나 하고 생각했다”며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고 화답했다. 신문은 “중산층을 중시하는 바이든에게도 총리의 주장이 울림이 있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애초 기시다 총리는 지난해 10월 말 중의원 선거 후 올해 1월 중순 시작된 정기국회 시작 전에 미국을 방문, 정상회담을 갖는 방향으로 추진해 왔다. 하지만 미국에서 연말 오미크론 감염이 급격히 확산되면서 방미는 어려워졌다. 화상 회담이 성사된 데는 람 이매뉴얼 신임 주일미국대사의 힘이 컸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람 대사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 대통령 수석보좌관을 맡아 바이든 대통령과도 가깝다.
미일은 동·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하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언급하는 등 중국 대응에 거의 일치했지만, 세부적인 부분은 차이도 있었다. 경제 안보 협력을 강조하고 ‘경제판 2+2’ 회의 신설도 합의했으나, 일본은 미국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참가하길 거듭 요청한 반면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경제틀’이라는 새로운 구도를 추진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지지기반인 노조 측의 반대로 TPP 같은 다자 자유무역협정 참여가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정상회담을 두고 일본 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이 “전보다 평등한 파트너가 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은 대중국 정책과 관련 일본에 방위력 증강 등을 요청하며 가장 크게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치대의 마에사마 가즈히로 교수는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급격한 인플레이션과 코로나19 감염 확대, 투표 관련 법안 통과 위기 등 미국 내에서 사면초가인 바이든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상대는 일본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기시다 총리는 ‘보수 속 리버럴’이고 바이든 대통령은 ‘리버럴 속 보수’여서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면서 “기시다-바이든 정권하에서 양국은 전보다 평등한 파트너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