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주(州) 유대교 회당에서 인질극을 벌이다 사살된 용의자는 40대 영국인으로 확인됐다.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의 감시 대상 목록에도 올라 있지 않은 인물인 데다 다른 범행과 연계된 정황도 드러나지 않아, 수사당국은 반(反)유대주의와는 무관한 일탈적 범행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용의자가 평소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가족 증언도 전해졌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텍사스주 콜리빌시 유대교 회당에 침입한 인질범이 44세 영국 국적 남성 말리크 파이살 아크람이라고 밝혔다. 아크람은 전날 오전 안식일 예배 중이던 회당에서 유대교 성직자 랍비 4명을 붙잡고 11시간 동안 대치하다가 인질 구출에 나선 경찰이 쏜 총에 사망했다. 인질은 모두 무사히 풀려났다. FBI 텍사스 댈러스 지부 특별수사관 매슈 드사르노는 “현재로선 다른 사람들이 인질극에 관여한 정황은 없다”고 밝혔지만, 영국 대(對)테러 경찰은 “수사의 일환으로 맨체스터에서 10대 두 명을 붙잡아 구금 중”이라고 설명했다.
CNN에 따르면 아크람은 지난달 뉴욕 JFK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입국 심사 과정에서는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 아크람이 미국 정부가 지정한 감시 대상자도 아니었고, 테러 정보를 망라한 정보기관 데이터베이스에도 그와 관련한 정보는 없었다. 모국인 영국 정보기관에도 특이점이 포착되지 않은 인물이었다.
아크람이 범행 전 댈러스의 노숙인 보호소에서 며칠 밤을 보낸 사실도 확인됐다. 보호소 측은 아크람이 이달 6일 처음 들어온 뒤 여러 차례 입소와 퇴소를 반복했고, 사건 이틀 전인 13일 마지막으로 시설을 떠났다고 CNN에 설명했다. 브루스 버틀러 소장은 “그는 매우 조용한 편이었고 종교적 신념이나 성격을 알 만한 정보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은 아크람이 영국 북서부 랭커셔주 블랙번에 살고 있었다고 전했다. 아크람의 가족들은 인질극 당시 FBI 협상단을 도와 인질 석방을 위해 아크람과 통화하기도 했다. 아크람의 동생 굴바르는 블랙번 무슬림 공동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아크람이 정신 건강 문제로 고통받고 있었지만 가족들은 그가 인질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며 “총격전이 일어나기 전에 인질들을 모두 풀어줬다”고 주장했다. FBI의 대응이 과했다는 얘기다.
범행 동기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특정 종교를 겨냥한 증오범죄는 아닌 것으로 수사당국은 보고 있다. 아크람이 ‘레이디 알카에다’로 불리는 파키스탄 출신 여성 과학자 아피아 시디키의 석방만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CNN은 소식통을 인용해 “아크람이 FBI 협상단에 ‘시디키를 회당으로 데려와 함께 죽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시디키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장교와 미국인 등에 대한 살인 미수 및 테러 혐의로 2010년 86년형을 선고받고 텍사스 포트워스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특별수사관 드사르노는 “용의자는 시디키 이슈에만 집중하고 있었고, 유대인 공동체와는 관련이 없는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FBI가 사건을 지나치게 협소화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폭스뉴스는 보수 성향 라디오 진행자인 제시 켈리의 “FBI는 민주당의 적을 파괴하는 데만 집중하는 조직으로 전락했다”는 트위터 글을 인용하면서 이번 사건을 그간 FBI가 대내외 테러범 색출에 관심이 없었던 방증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필라델피아의 한 구호단체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번 사건을 “명백한 테러 행위”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모든 사실을 파악한 건 아니지만 용의자가 손쉽게 거리에서 무기를 샀다고 들었다”며 총기규제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